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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시루섬, 기적의 그날

by Kang.P 2024.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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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1일 목요일 밤 9시. 작년 한 해 준비한 다큐멘터리 ‘시루섬, 기적의 그날’이 전파를 탔다. 방송 당일까지도 눈에 거슬리는 게 보여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야 했다.

그렇게 모든 방송 준비가 끝났다 싶었는데, 퇴근하고 충주로 넘어오는 셔틀 안에서 다급하게 전화벨이 울렸다. 제작국장이었다. 통화 내용은 충주연주소의 CM이 많아서 1분 30초를 줄여야 한다는 것.

어럽게 찾은 평정심이 다시 무너졌다. 공들인 다큐를 무 자르듯이 싹둑 잘라 버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본방을 청주에서 볼까도 살짝 고민했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랬다면 내용을 모르는 사람 손에 의해 1분 30초가 잘려나가는 불상사가 발생했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느 한 군데 버릴 곳이 없었지만 집도의의 심정으로 총 3군데를 수정하였고, 방송을 10분 남짓 남겨두고서야 주조로 보낼 수 있었다.



다큐 제작에 함께한 촬영 감독을 비롯해 몇몇 사람들과 본방송을 함께 봤다. 특히 세종시에 사는 촬영 감독이 함께 본방 사수를 하기 위해 충주까지 넘어오는 정성에 감동 받았다. 같이 방송을 보며 좋은 이야기를 해 준 사람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적어도 본방을 보는 자리에서 만큼은 논평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그동안 고생했다는 위로를 받고 싶었는데, 이심전심이었나 보다. 
 
백 번을 넘게 봤어도 모니터로 보는 것과 TV를 통해 방송으로 보는 것은 천지 차이다. 골방에서 혼자 춤추는 것과 많은 인파들 앞에서 춤추는 것의 차이랄까? 편집할 때는 컷 하나를 두고도 고뇌하며 몇 번을 고치는 지난한 과정의 연속이었는데 정작 방송은 야속할 만큼 빨리 끝나버렸다. 이 한 시간을 위해 작년 한 해를 그렇게 뛰어다니며 고민한 건가 생각하면 허무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방송의 숙명이다.
 
그렇게 방송은 끝이 났고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우린 모두(나만 그랬나?) 취해 있었다.

기분이 좋았는지 이날은 노래방까지 갔다. 가족끼리 외식을 할 때면 가끔 아이들과 간 적은 있었지만 그 외에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목에서 피를 토하듯 김진호의 ‘가족사진’을 불렀고 내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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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일을 치르고 나서 긴장이 풀린 탓인지 어제의 과음 때문인지 다음 날 몸살 기운이 있었다. 반나절 누워 있으면 회복되겠거니 생각했는데, 오후로 넘어가자 목감기 증상도 나타났다. (이럴 때면 언제나 그랬듯)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데, 아내의 한 마디가 비수로 와 꽂혔다.

“오빠 이제 낼모레면 오십이야... 병원 가 봐.”

너는 뭐 평생 청춘일 것 같냐,며 따지고 싶었지만 지금은 새겨들어야 할 상황이라 판단했다.

토요일 아침에 병원을 찾았고 A형 독감 진단을 받았다. 이로써 우리 네 가족은 모두 A형 독감에 걸리게 됐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처럼, 큰 일을 치른 후 아픔이 따르는 건 성숙을 위한 과정이겠지? 성숙을 논하기에는 다소 연식이 높은, 외려 노화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법한 사십 대 후반의 나이지만, 마음만큼은 여전히 철부지 이십 대의 그것이기에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시루섬, 기적의 그날>의 제작에 동참해 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 잘 방송할 수 있었고, 아픔, 아니 아니, 성숙의 과정에 함께해 주신 것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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