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점심 후 산책

by Kang.P 2024. 1. 22.
728x90

일찍 점심을 먹고 오랜만에 산책을 나섰다. 건물 하나 없는 대로변을 지날 때는 칼바람에 얼굴 살점이 떨어져 나갈 듯했지만, 역경을 이겨내고 돌아오니 '그래도 나가길 잘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충주에 있을 때는 매일이다시피 점심 식사 후 호암지를 돌았다. 회사 바로 앞이라 가까웠고 약 40분에 걸쳐 한 바퀴를 돌면 3Km가 조금 넘는 거리를 걷게 되는데 적당히 땀도 나서 사뭇 운동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호암지를 돌 때면 눈이 즐거웠다. 산책로도 훌륭할뿐더러 멋진 나무들로 조경이 잘 돼 있어서 꾸준히 돌다 보면 연둣빛 새순이 올라오고, 단풍잎이 시나브로 붉어지는 등 계절이 바뀌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호암지 전경 <출처 : 충청일보>

 
지금은 청주로 출근하게 되면서 더이상 호암지의 사계를 즐길 수 없게 됐지만, 선배를 통해 산책할 만한 길을 알게 되었다. 회사 옆 홍골 마을을 가로질러 가경노인복지관까지 간 후 게이트볼장을 한 바퀴 돌고 되돌아오면 약 3Km를 걷게 되는데, 호암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시골 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서 작은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대규모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면서 점심 때면 찾던 샛길이 높은 펜스로 막혀 버렸다. 아쉬운 대로  회사 앞 큰길을 따라 'ㅁ'자 모양으로 크게 도는 코스를 개발했는데 재미라곤 1도 찾아볼 수 없는, 오로지 '운동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꾸역꾸역 걸어야 하는 그런 길이었다.  
 
길이 재미없다 보니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을 걸을까 말까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길을 나설 때가 있는데, 가장 큰 동력은 답답함이다. 

반응형

아무리 회사가 난방이 잘 되고 포근해도, 감당하기 힘든 답답함이 밀려올 때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걷는다. 오늘처럼 칼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상황과도 마주하게 되는데, 정신없이 몰아치는 바람이 마음속 답답함까지 날려 주는 것 같아 되레 고맙다.
 
어떤 감정인지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큰 프로젝트를 마친 후 밀려오는 허무함 같은 건가 싶다가도, 고구마를 한 입 크게 베어 문 듯한 답답함이 뒤섞여 요상한 감정 상태에 이르게 된다.
 
입사 19년 차에 겪게 되는 미래에 대한 고민과 막막함 때문이라고 한다면 좀 더 솔직하겠다. 물론 이런 고민과 막막함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고 진작부터 머릿속에 있어 왔지만, 직장 생활 20년을 코앞에 두고 있으니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일 수도 있다.
 
생각이 이쯤에 미치면 아버지를 떠올리게 된다. 20년 넘게 시멘트 회사에 다니며 자식 둘을 키우셨던 아버지. 2000년대 초반, 구조 조정의 칼바람 속에서 명퇴를 신청하고 퇴사하신 우리 아버지 말이다. 나와 동생 모두 대학생인 상황에서 조금만 더 버티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당시의 아버지 연배와 비슷해지고 보니 조금은 그 심정을 알 것 같다.
 
그런 결심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홀로 술잔 기울이며 고민의 과정을 겪으셨을까. 말로는 이해한다고 해도 100% 그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약 30분 남짓 칼바람 속을 걷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드나들었다. 답답함이 시원하게 해소되진 않았지만 마냥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것보단 숨통이 트였다. 머릿속이 복잡할수록 움직여야 한다. 가만히 앉아 고민해 봤자 더욱 깊은 고민의 수렁으로 빠져들 뿐이다. 
 
답답하고 머릿속이 복잡하다면 자리를 박차고 문밖으로 나가시라.
시원한 겨울바람에 훌훌 날려 버리고 오늘도 파이팅 하시길...
 
 
 
 

반응형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동차 변천사  (2) 2024.02.18
제우회 신년 모임  (2) 2024.01.28
시루섬, 기적의 그날  (4) 2024.01.14
과유불급  (4) 2024.01.02
2024년 갑진년, 반갑다  (1) 2024.01.0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