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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뜬금없이

by Kang.P 2024.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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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점심을 먹고 회사를 나섰다. 4월 들어서 비 내린 어제 하루 빼고는 매일 점심 후 산책에 나서고 있다(사실 그래봤자 3일째다). 좋은 산책로는 아니지만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다양한 봄꽃들이 경쟁하듯 자태를 뽐내고 있어 눈이 즐거운 요즘이다.
 


이어폰 너머 달팽이관을 뒤흔드는 크라잉넛의 샤우팅은 끄물끄물한 날씨 속에서도 리듬을 타며 걷게 한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갑작스레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너무 뜬금없어서 다소 당황했다. 먼저 대학시절 함께 학생회를 했던 형의 얼굴이 떠올랐는데, 꽃을 보고 그 형이 생각났을 리는 만무하고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급작스럽게 머릿속이 형의 모습으로 채워졌고 이는 형의 근황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사실 나란 놈이 살갑지 못해서 손윗사람에게 불쑥 전화해 안부를 묻는 등의 행동을 잘 못한다. 기질이 이러다 보니 언제 연락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다. 

뒤이어 떠오른 건 충주에서 인연을 맺은 또다른 형이었다. 그는 나와 같은 업종에서 일하다가 아버지의 사업체로 들어갔고 지금은 대표 자리에서 열심히 회사를 일구고 있다.

30대 젊은 시절 많은 추억을 공유한 형인데 각자의 삶이 바쁘다 보니 예전처럼 자주 보지 못해 아쉬운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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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하거나 예상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의 갑작스런 등장에 몹시 당황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요즘 많이 외롭나?’ 하는 물음이 뒤를 이었다.

그런가 보다. 일할 때야 으쌰으쌰 동료들과 최선을 다하지만, 일 외에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가 고픈가 보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그런 사람 몇 명 못 만들 일도 아니다. 다만 회사라는 공간에서는 쉽지 않다. 입사 초, 누군가에게 어렵게 꺼낸 고민과 속마음이 며칠 후 사람들 입에 회자는 되고 있던 충격적인 경험 후, 여간해선 회사에서 깊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물론 회사라는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문제일 수도 있다. 혹, 사람 보는 눈이 없는 내 탓일 수도 있겠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그 일 이후 많은 말로 사람들에게 웃음 주는 사람보다 그저 허허허 웃으며 조용히 듣고 있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어쩌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나 싶은데 아무튼, 문득 생각난 사람들 덕분에 오랜만에 그 시절의 나, 지금보다 젊었고 열정적이었고 꺾이지 않으려 했던 시절의 나와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 두 번째로 생각난 형에게 전화를 했다. 오랜만에 안부 전화했다고 하자 고맙다며 지금 외부 일정 중이라 끝나고 연락하겠다며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19시간 전의 일이다.
형은 19시간 넘게 외부 일정 중인가 보다.
참 바쁜 사람이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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