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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이제 괜찮지?

by Kang.P 2020.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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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계획대로면 지금 쓰는 글은 지난 제주 여행의 후일담이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의 심리 상태는 속 편하게 여행의 여운을 되새기고 있기엔 너무 흥분돼 있다. 이 흥분은 짜릿한 경험으로 아드레날린이 분비될 때 느껴지는 기분 좋은 흥분이 아니라, 짜증이 폭발하여 뒷목 잡으며 느끼는, 아주 기분 나쁜 흥분이다.

 

흥분을 삭힐 방법을 찾다가 어둠을 뚫고 나와 호암지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마스크를 낀 채 잰걸음으로 돌았더니 호흡이 가빠왔고 그렇게 약 5Km를 걷고 나서야 조금은 평정심을 찾는 듯했다(덕분에 애플워치 3개의 링을 모두 완성했다).

 

오늘 겪은 속상했던 일을 배설하듯 쏟아 내고자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또 막상 공개된 블로그에 미주알고주알 적어가려니 마흔셋이라는 나이가 부끄러워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련다.

 

이게 참, 당연한 말이지만 모두가 내 맘 같지 않으니 사회생활은 힘들 수밖에 없다. 일이라는 게 순서가 있는 법인데, 내가 생각하는 순서와 상대방이 생각하는 순서가 다를 때도 있고, 내 입장에서는 가혹하게 느껴지는 행위에 대해 상대방은 '뭐가 문젠데?' 하며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둘 중 하나가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확실한데, 그게 나인지 상대방인지는 모르겠다(물론 내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문제지만 말이다). 

 


여기까지 쓰고 있는데  잠자러 간 네 살짜리 둘째 딸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곤 다가와 혀 짧은 소리로 말한다. 

 

"아빠 속땅하지? 아까 전화받고 아빠가 속땅했다고 엄마가 말했떠. 지그믄 괜차나? 내가 안아줄게, 힘내~"

 

라고 말하며 가슴에 파고들어와 꼬옥 안아주는 것이 아닌가. 이거 참....

 

"어때? 이제 괜찮지?"

 

하며 넌지시 바라보는데, 지금까지 쓴 글이 부끄러워 싹 지워버리고 싶었다. 네 살짜리 아이가 어디서 이렇게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하는 법을 배웠을까 싶다(앞서 이야기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나는 아닌 것 같다. 내 딸을 보면 말이다). "아빠 이제 괜찮아"라고 말하고 아이를 안고 안방으로 가는데, 이번에는 (열심히 돈 벌라는 노래)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를 불러주는 것이 아닌가. 까딱했더라면 눈물로 애 머리 감길 뻔했다.  

 

처한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아이의 위로와 응원 덕에 평안하다 못해 행복해졌다. 처음 의도한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돼 버렸는데, 삶에 있어 가족이 가장 큰 위로고, 자양 강장제이며, 때로는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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