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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휴업과 12,000원짜리 짜장면

by Kang.P 2020.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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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7개월 간 준비한 다큐 '새날의 아이들'은 지난 11월 7일 저녁 8시 50분에 전파를 탔고, 나는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반년 넘는 기간 동안 고생한 결과물이 너무 쉽게 일회성으로 휘발되는 것 같아 아쉽지만, '방송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이 아니던가' 생각하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

 

그런 중에도 어김없이 한 달 중 5일의 휴업은 지켜야 했다. 지난 '13일의 금요일'에는 이 휴업을 통해 오랜만에 반가운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대학 시절의 사람들인데, 이날 함께 한 형은 수시로 연락하고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데 반해, 두 명의 후배들은 결혼식 후 처음 보는 것이니, 대략 6년 만에 대면하는 것이었다. 

 

2001년에 제대하고 그 후년에 3학년으로 복학했을 당시, 이들은 같은 학년에 재학 중이던 00학번 후배들이었고, 앞서 이야기한 형은 그 시기에 편입을 해서 알게 되었다. 첫만남은 어색했지만 졸업할 때까지 줄곧 어울려 다니며 함께 학교생활을 했다.

 

우리는 판교 현대백화점 9층에 있는 JS가든이라는 중식집에서 12시 반에 만나기로 했는데, 나는 당일까지도 참석여부에 대한 확답을 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날 대규모의 부서 회식이 있었기 때문에 다음 날 나의 상태를 확신할 수 없었고, 만의 하나 채 술이 깨지 않은 상태로 충주에서 판교까지 운전하는 중에 예상치 못한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도 컸던 탓이다.

 

행인지 불행인지 전날 과음에 비해 상태가 양호했다. 그렇더라도 밋밋하게 '안녕, 나 왔어' 하며 나타나는 건 재미없지 않은가. 반전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요량으로 마지막까지 못 올라온 것처럼 연기하다가 '짠'하고 그들 앞에 섰는데, 썩 놀라는 기색도, 그렇다고 반가워하는 기색도 없어서 당황한 나머지 큰 소리로 울 뻔했다. 

 

 

사실 판교 다 들어와서 차선을 잘못 타는 바람에 다시 용인 쪽으로 내려가다가 돌아오느라 약속 시간보다 늦었다. 당연히 내가 가장 늦게 도착한 줄 알았는데, 20년 전에도 항상 '놀고 있어'를 입어 달고 다니던 80년생 후배 녀석은 2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먹고 있어'라는 말만 남긴 채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약속 장소를 중식당으로 정한 데에는 이곳이 유명한 것도 있지만 나의 해장을 위한 그들의 배려도 있었다. 짜장면을 시켰다(요즘은 짬뽕보다 짜장면으로 해장을 한다). 이곳은 모든 면이 도삭면으로 나왔는데, 전날의 숙취 때문인지 넓적한 면은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남김없이 다 먹었)다.

 

이런 고급 중식당은 경험이 많지 않다(고 쓰고 거의 없다고 읽는다) 보니, 촌스럽게 메뉴판을 보며 동네 중국집과 가격 비교를 하게 된다. 예를 들면, '여기 짜장면 하나가 12,000원인데, 이 가격이면 동네 중국집에서 짜장면(5,000원)과 짬뽕(7,000원)을 함께 시킬 수 있는 가격이 아닌가' 하는 식이다. 물론 나도 안다. 음식의 가격이라는 게 음식의 원 재료비뿐만 아니라 요리사의 솜씨와 제공하는 공간과 분위기까지 포함한다는 것을 말이다(럭셔리 중식을 사준 규일형에게 감사한다).

 

오래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고 싶었지만, 일이 있어서 오후 5시 전에는 충주에 도착해야 했다.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서 백화점 5층 야외 가든에 앉아 짧은 대화를 나눴다. 다들 가정을 꾸리고 나니, 대화의 내용도 애들 키우는 이야기, 혹은 아파트를 얼마에 샀느냐, 얼마나 올랐느냐는 둥의 이야기들이었다. 나이가 들어감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충주에 도착해서 일을 마치고는 기절하듯 잠들었다. 피곤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약속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정신력으로 버틴 건가 보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 만남을 통해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그들은 기억하고 있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이런 만남이 의미 있는 건, 이들을 통해 과거의 나와 만나게 되고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놓치고 사는 '그 시절 나'에게 소중했던 가치들을 말이다.

 

 

JS가든의 12,000원짜리 짜장면

 

언제 또 이렇게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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