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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주말농장, 그 서막의 시작

by Kang.P 2019.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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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추워서 안 돼요."

 

주인아주머니는 나름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어떻게든 팔아야 이익이 남을 텐데 아직은 이르니 나중에 사라는 말에서 진정성이 느껴졌고, 맥이 빠지긴 했지만 일단 골을 덮을 비닐만 샀다. 첫날부터 모종을 심으며 힘차게 시작하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주말농장은 예전부터 고민(만) 해 왔었다. 식재료비를 아끼는 차원이 아니라, 아이들이 흙에서 뛰어놀며 땅과 교감하고 식탁에 올라오는 반찬들이 마트에서 사는 게 아닌 아빠의(농민의) 노동에 따른 결과물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사실 회사 선배가 자신의 텃밭에서 주말농장 해 보라고 여러 해 전부터 이야기했는데,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렸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다섯 살, 세 살이 되니 가족이 함께하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때 생각난 것이 주말농장이었다. 또한 두 명의 직장 동료와 함께하다 보니, 나태해질 때 잡아주고 끌어줄 수 있어서 혼자 하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

 

바로 어제, 그 야심 찬 첫발을 내디뎠다.

 

 

사진으로 볼 때는 만만하게 봤는데 막상 가서 보니, 생각보다 넓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그냥 땅 보러 다니는 업자들의 시각에서는 그리 넓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허리 숙여 농사지어야 하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엄청 넓게 느껴졌던 것이다. 

 

한참을 고민했다. 농사를 얼마나 지어야 할 것인가... 순간의 선택이 이후의 노동 강도뿐만 아니라 나아가 농사를 포기하는 사태로 치달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장고 끝에 딱, 두 골만 하기로 했다(골 하나가 엄청 길다고요, 뭐~).

 

함께 주말농장을 가꾸기로 한 동료(이하, 농부 1)는 일찌감치 나와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건너편에 두 개의 골을 선택하고 퇴비를 뿌렸다. 퇴비를 뿌리면서 남아있는 비닐 조각과 돌들을 골라냈다. 별것 아니라 생각했는데, 퇴비 뿌리는 것도 은근히 힘이 들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노동으로 인한 땀이 몸 밖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첫 주말농장 간다고 가족이 총출동했는데, 아직 아무것도 심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들의 놀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무언가 수확할 것이 달리기 전까지는 혼자 와서 일해야겠다고.

 

할 게 없어서 개미보며 놀고 있는 아이들.

 

딱히 아이들이 놀 게 없다 보니, 초조해졌다. 특히 둘째가 짜증을 부리기 전에 일을 끝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그녀가 짜증을 내기 시작하면 이 밭에 있는 모든 사람이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퇴비를 주고 돌과 비닐 조각을 골라내는 작업을 마친 후, 본격적으로 비닐 씌우기를 시작했다. 수년의 주말농장 경험이 있는 농부 1이 씌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 방법대로 비닐을 씌워 나가는데, 이게 정말 힘들었다. 

 

 

안 쓰던 근육을 쓰다 보니(평소 쓰는 근육도 별로 없다만...) 금방 팔다리가 후덜덜거렸다. 그래도 오늘 두 골을 마쳐야 했다. 주 중에 다시 찾을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오늘 비닐 씌우는 걸 끝내 놔야 다음에 와서 모종을 심으며 일정대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낑낑대며 골 하나를 다 씌우자, 같이 주말농장 하기로 한 다른 동료(이하, 농부 2)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멋쟁이 선글라스를 끼고 말이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가 좀 그렇지만, 나름 일머리를 빨리 이해하는 편인 것 같다. 힘들었어도 예상보다 빠른 시간 안에 두 골 비닐 씌우기를 마쳤다. 내 옆에 진지를 구축한 (늦게 온) 농부 2는 말이 참 많았다. 처음에는 '나는 꽃을 심을 거야' 하며 낭만을 이야기하더니 금세 '이걸 내가 왜 한다고 해 가지고 이 고생을 하냐'며 통한의 땀방울을 뿌려댔다. 

 

파란 점퍼를 입은 이가 통한의 땀방울을 뿌려댄 농부 2.

 

토요일 정오가 되기 전에 임무를 완료했다. 보람찼다. 평소 토요일 오전은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보내는 시간인데, 그 시간에 무언가를 성취했다는 게 뿌듯했다. 2주 후에는 모종을 심을 것이고, 주말이면 이것들이 잘 자라는지 보러 오갈 것이고, 그러다 언젠가는 농부 1, 2와 함께 텃밭에서 삼겹살을 구우며 '부농의 꿈을 위하여'를 외치며 잔을 부딪힐 것이다. 시작했으니 반은 한 것이다. 그렇게 믿고 열심히 농사 지어 보자.

 

그나저나, 저기에 뭘 심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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