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안녕, 넷플릭스

by Kang.P 2019. 3. 18.
728x90


지난 1월 중순, 오랜만에 상경하여 대학시절 사람들을 만났다. 취업과 함께 충주라는 지역으로 내려왔고, 이곳에서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예전처럼 사람들 만나러 자주 올라갈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날의 자리는 소중했다(여보 고마워). 오랜만이다 보니 할 말도,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나왔다는 성수동의 작은 족발집에 모인 우리는, 10대 소녀처럼 까르르 웃어대며 술잔을 주고받았다.

넷플리스를 접한 것도 이 자리에서다. 물론 기사 등을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정확히 어떤 시스템이고 어떤 콘텐츠들이 올라와 있는지는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친구 녀석의 설명을 들으니 가히 충격이었다. 특히 영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수용자(관람자)의 선택에 따라 다른 결말을 가져온다는 인터랙티브 영화가 그랬다. 평소 호기심이 많은 편이 아닌데, 다음날 바로 넷플릭스를 신청했다(1달간 무료였기에 바로 실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충격을 주었던 ‘밴더스내치(Bandersnatch)’를 시작으로 ‘킹덤’, ‘기묘한 이야기’ 시즌1, 2, ‘버드 박스’ 등을 시청하며 콘텐츠의 홍수에서 즐거운 비명을 질렀고, 지금은 ‘홈랜드(homeland)’를 정주행하고 있다. 한 달간의 무료 기간이 끝나고 아내의 계정으로 다시 한 달을 무료로 시청할까 고민하다가 ‘문화생활을 위해 한 달에 만원 조금 넘는 돈은 투자할 수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에 지금은 유료로 전환한 상태다.

그러던 중 문제점을 발견했으니, 다름 아닌 중독성이다. TV 드라마처럼 다음 주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보니, 한번 빠지면 다음 회차에 대한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이어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새벽 2, 3시. 다음 날 출근하면 수면 부족으로 몽롱한 상태로 일과를 보내고, 퇴근하면 다시 넷플릭스를 클릭, 그러다 보면 또 새벽 2, 3시. 악순환의 연속이다(물론 지금은 초창기처럼 열성적이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또 하나의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이다. 넷플릭스에 빠지고부터 많지도 않았던 아이들과 노는 시간이 더 줄었다. “아빠 놀자!”며 달려드는 아이들에게 “알았어, 아빠 여기까지만 보고”하며 등 떠미는 것도 모자라, “아빠 일 때문에 이거 꼭 봐야 해”하며 하얀(?) 거짓말도 서슴없이 내뱉고 있었다. 아내의 잔소리는 잦아지고 톤도 높아졌으며, 미안하다, 잘못했다며 TV를 끄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하루 종일 일하고 와서 이것 좀 보겠다는데, 그것도 안돼”냐며 되려 큰 소리를 내는 경우도 생겼다(못난 놈).

영화 드라마에 빠져 현실을 등한시하는 모습이 게임 중독과 닮았다. 넷플릭스를 접하면서, 아이들과 노는 시간뿐 아니라 책 읽는 시간, 아내와의 대화 시간도 줄었다. 전형적인 카우치 포테이토의 모습이다. 위험한 주객전도다. 하여 넷플릭스를 끊기로 결심했다. 방송과 통신의 결합에서 나온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이고, 새롭고 다양한 콘텐츠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으로 인해 가족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적당한 선에서 맺고 끊지 못하는 나의 우유부단함이 가장 큰 이유다.

쓰다 보니 넷플릭스와 이별을 고하는 송사가 되어버렸다. 홈랜드 시즌3의 2화를 보고 있는 와중에 이별하게 되어 아쉽지만, CIA 요원의 대테러 활동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가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

그럼... 안녕, 클레어 데인즈...

 

반응형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밤에 뜀박질  (0) 2019.04.29
주말농장, 그 서막의 시작  (0) 2019.04.14
Adieu 고향생각  (0) 2019.03.12
금요일의 넋두리  (0) 2019.03.08
마흔 둘의 얼굴  (0) 2019.02.1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