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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마흔 둘의 얼굴

by Kang.P 2019.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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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끝난지 일주일이 지났다. 양가 어르신께 인사드리고, 갑작스럽게 친구 장인 어르신이 돌아가셔서 조문하고 오니 5일의 연휴는 사라지고 없었다. 


역시 아이들이 있으니 명절 분위기가 활기차고 웃음이 떠나지 않더라. 오랜만에 집이 사람들로 북적대니, 아버지 어머니도 무척 좋아하셨다(물론 그만큼 지금은 헛헛하실 테지만 말이다).







이처럼 명절에 친척들을 만날 때면 든든하면서도 한편으론 평소 신경 쓰고 챙기지 못하는 내 모습에 미안하기도 하다. 남는 건 가족이고 친척인데 말이다. 사회생활이 바쁘겠지만, 좀 더 가족에게 신경을 써야겠다 다짐하며 충주로 넘어왔다. 



이런 다짐과 아울러 얼마 전부터 머릿속을 맴도는 말이 있다.


'나이 마흔이 넘으면 누구나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저런 말은 누가 한 걸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미국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에이브러햄) 링컨이 인재 채용 때 했던 말이란다. 이제 막 마흔 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사십 대라는 나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음에도 이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요즘 표정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평소의 표정이 쌓여서 인상이 될진대, 언제부턴가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은 항상 찌푸리고 있었다. 아무 표정을 짓지 않고 있어도 미간 깊이 선명하게 파여있는 주름이 증거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천성이 진지하고 생각이 많아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인상을 쓰며 무언가를 고민하고 몰두하는 놈이었다면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대학 시절에는 듣는 사람마저 기분이 좋아졌다(?)는 호탕한 웃음의 소유자였는데, 왜 이리도 푸석푸석한 사십 대 초반의 중년으로 변해버린 것일까. 물론 20대의 고민과 지금의 그것은 질적, 양적으로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40대들이 인상 팍팍 쓰며 살고 있나 하면 그렇지도 않다. 


늦은 나이에 결혼했고 나이 사십이 넘어 어린 두 딸아이를 키우면서도 표정의 중요성을 느낀다. 아이들의 관찰력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뛰어나고, 아빠 엄마의 표정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다 보니, 은연중에 나오는 부모의 표정 하나하나를 살피며, 이런 표정을 지을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 큰소리 안 나오고 조용히 넘어갈지를 눈치 보는 것이다. 이런 것을 느낄 때면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신경을 써야겠다 다짐하지만, 몸에 붙지 않으니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명절 연휴가 끝난지도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얼굴에 대한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긍정적인 생각이 우선이겠지만, 억지로라도 웃으려는 노력이 쌓이면 태도 역시 바뀌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오늘도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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