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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고장난 보일러는 돌아가지 않았다

by Kang.P 2019.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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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잘 돌아가고 있지만 지난 일요일, 보일러가 고장 났다. 그날 아침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장도 보고 푸드코트에서 점심도 먹을 겸 마트를 찾았고, 약 2시간 후 돌아왔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어디선가 미세하게 벨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이렇게 전화를 안 받나' 생각하며 현관으로 향하는데 소리가 점점 선명해진다. 우리 집 보일러 컨트롤러에서 나는 소리였다. 이 증상은 처음이 아니었다. 이사 오던 날, 도시가스를 연결하고 보일러를 켜자 똑같은 증상이 나타났었다. 다행히 몇 번 껐다 켜니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소용없었다. 


방은 점점 식어갔고 고민은 늘어갔다. AS센터에 점검 서비스를 신청했다. 상담 직원은 접수는 되었다고 알려줬다. 그러나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이라 오늘 점검하러 갈 수 있을지는 본인도 확답할 수 없고, 지정된 서비스 센터에서 전화가 갈 것이니 통화해 보라고 첨언했다. 


일요일이고 늦은 오후다. 오늘은 힘들 것 같았다(예상대로 전화는 오지 않았다). 빨리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러 고민을 하던 중, 아직 비어있는 전에 살던 집이 생각났다(지금 사는 곳 바로 뒷동이다). 가스, 전기 다 살아있기에 하룻밤 정도는 그곳에서 보내면 될 것 같았다. 


아내에게 이야기하니, 처갓집에 가서 자면 되지 않겠냐고 한다. 이렇게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니... 청소도 안 되어 있고, 집기 하나 없는 곳에서 아이들을 재우는 건 무리라고 했다. 공감한다. 


하지만 한 번 마음먹은 것을 되돌리기 싫어서일까. 전에 살던 그 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갔다. 결국 아내와 아이들은 처갓집에 데려다주고 나는 침낭과 세면도구를 챙겨 들고 4년간의 추억이 아로새겨진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저렇게 잠자리를 폈다. 보일러를 켜니 금방 바닥에 온기가 돌았다. 저렴한 가격의 봄가을용 침낭이라 다소 걱정했는데, 바닥이 따뜻해서 문제없었다. 아내는 왜 이렇게 궁상을 떠냐며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이런 때 아니면 언제 또 이런 잠자리를 가져보겠는가.



불을 끄니 조금 무서웠다. 얼른 일어나 열린 문들을 모두 닫고 다시 침낭 속으로 파고들었다. 텅 빈 공간에 덩그러니 혼자 누워있으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생각들... 나의 미래에 대한 고민... 2019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등등....



여기로 이사 오기로 한 예비 신혼부부는 대출에 문제가 생겼는지 날짜를 세 번이나 바꿨고, 결국 이번 달 말에나 이사 오기로 했다. 부디 이곳에서 좋은 일만 있길 기도하며 잠이 들었다. 


보일러 경보의 원인은 온도센서 고장이었다. 다음 날 찾아온 AS 기사님은 키가 엄청 크셨는데, 매우 친절하셨다. 아파트 지을 때 설치한 보일러라서 많이 노후되었다고 이야기해 주시는데, 세입자인 나로서는 부품 교체하며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보일러는 부품 교체 이후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 부디 남은 10개월 동안 더 이상은 말썽 부리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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