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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2018년 최강 한파 속 이사

by Kang.P 2018.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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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8일은 올 겨울 최강 한파가 들이닥친 날임과 동시에 우리 집 이삿날이었다. 이삿짐센터에 이미 선금을 지불하고 계약을 해 놓은 상태라, 날씨가 춥다는 이유로 날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포장이사를 경험한 적이 없으신 부모님은 수시로 전화하셔서, 추운데 이사하느라 고생이 많다고 하시는데, 사실 이삿날의 한파로 가장 고생인 사람은 이삿짐을 포장하고 나르시는 분들이다. 


이삿짐센터에서는 총 5분이 오셨다. 밑에서 사다리차를 조정하는 분과 짐을 받아 싣는 분, 집 안에는 세 분이 짐을 꾸리셨다. 그중 키가 큰 30대 후반 정도 돼 보이는 이가 담당자 같았고,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분이 함께 짐을 싸서 옮기셨다. 체구가 작으셨는데, 힘이 엄청나셨다. 거든다고 섣불리 달려들었다가 꼼짝도 않는 문짝에 당황하는 찰나에 이 분이 가볍게 들어 옮기셨다. 마지막 한 분은 아주머니셨는데, 주로 주방을 담당하셨다. 


아내와 아이들은 일찌감치 큰 딸 친구네 집으로 피신(?)했고, 그래도 한 명은 짐 싸는 것을 지켜봐야 할 것 같아, 혼자 남아 기웃거리고 있었다. 역시 전문가는 달랐다. 각자 방을 하나씩 맡더니, 일사천리로 상자에 물건을 담아 내놓았다.


이렇게 남아서 보고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특이 사항은 이미 몇 차례 이야기해 놓은 상황이었고, 괜히 복잡하고 정신없는데, 걸리적거리기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담당자로 보이는 큰 키의 직원이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지금은 안 계셔도 되실 것 같아요. 이사 갈 집으로 짐 올릴 때 오셔서 위치만 잡아주시면 될 것 같네요... 저희들 점심도 시켜 먹고 해야 해서..."


맞는 말이었다. 잘 좀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러나 딱히 갈 곳도, 할 일도 없었다(아이들과 엄마들이 있는 곳에 불쑥 찾아가기도 낯부끄러웠다). 살살 배가 고파왔기에 일단 동네 중국집으로 갔다.


어릴 때는 식당에서 혼자 밥을 못 먹었다. 그만큼 남의눈을 의식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 굶은 적도 있었는데, 이젠 혼자서도 자신 있게 "짜장면 하나 주세요"를 외칠 수 있는 것을 보니, 마흔 넘어서야 철이라는 게 드나 보다.



짜장면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나니, 또다시 할 일이 없어졌다. 결국 이사 갈 곳인 앞동으로 먼저 갔다. 그렇다. 우리가 이사 가는 곳은 지금 사는 곳의 앞동이다. 내년 8월 입주를 위해 지금 아파트를 팔았고, 큰 딸 어린이집 때문에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집을 알아보던 중, 운 좋게 바로 앞동으로 이사 갈 수 있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마치 건너편 건물에서 상대를 정조준하고 있는 저격수처럼 이삿짐 나르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한파 속에도 열심히 짐을 옮겨주셨고, 그 덕에 해가 떨어지기 전에 이사를 끝낼 수 있었다. 


이사 과정에서 많은 것을 버렸다. 살던 곳보다 작은 평수로 이사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동안 쓸데없는 것들에 너무 집착하며 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는 짐을 싸는 게 아니라, 푸는데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미리 이사 올 집에 와서 줄자로 재며 어디에 무엇을 둘 것인지 계획을 세웠지만, 막상 가구가 들어오니 틀어지는 게 많았다. 대충 짐을 부리게 하고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아내와 둘이서 차분하게 위치를 잡아갔다. 


하루 만에 될 일이 아니었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첫날의 목표만큼만 정리하고 아이들을 재웠다. 피곤했지만, 그냥 보낼 수 없어 날이다. 치킨을 시켰다.



이렇게 결혼 후 첫 이사를 마쳤다. 2018년 최강 한파 속에서 힘들기도 했지만, 버릴 것은 버릴 수 있는 시간이었고 지금은 모든 정리를 마치고 2018년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오늘 밤은 곱창을 시킬 것이다).


10개월 간 이 곳에서 살면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2019년은 뭔가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다. 새로운 한 해도 좌충우돌 잘 살아보자, 우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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