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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여행/2018년 10월 베트남 하노이

[하노이] #.5 마지막 밤

by Kang.P 2018.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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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 금요일.

아침에 오토바이 경적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물리적인 소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3일 차가 되니 그 소리에 적응되어 느껴지지 않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이젠 길을 건널 때도 주저함 없이 자연스럽게 오토바이와 자동차 사이로 빠져나갈 수 있다. 


집 떠난 지 3일째가 되니, 가족이 보고 싶다. 물론 시대가 좋아져서 수시로 영상통화를 하며 이야기 나눴지만, 그것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그리움이 있다. 아내와 두 딸이 보고 싶어 지는 금요일 아침이다.


어제는 술을 많이 마셨다. 8년 만에 조우하여 그 동안의 이야기와 과거 추억을 주고 받았으니, 나의 간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나 보다. 마신 양에 비해 숙취가 그리 심하지 않았다. 새로운 하루를 힘차게 시작하기 위해, 역시나 마사지로 일과를 시작했다. 


가이드 역할을 해 준 형이 회사에 일이 있어서 이날 점심은 여행 온 3명이 해결해야 했다. 오랜만에 짜장면을 먹자, 한식을 먹어보자 의견이 많았지만 결국은 숙소 앞의 반미집에서 해결했다. 



반미는 베트남식 샌드위치라고 보면 될 것이다. 베트남과 안 어울릴 것 같지만, 프랑스 식민지 때 바게트 빵이 들어와 베트남식 속재료를 넣어 먹기 시작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미식가는 아니지만, 하노이에 와서는 음식 하나를 먹어도 음미하며 먹게 된다(언제 또 올까 싶어 하나하나 담아두고 싶은 마음인가 보다). 




반미는 맛있었다. 속재료에 따라 종류도 다양했다. 하지만 다른 음식의 선택은 실패했다. 




저녁에 호안끼엠 호수 가는 것 빼고는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또 카지노로 갔다. 나는 게임을 하지는 않았지만, 같이 간 일행이 돈을 따고 잃는 모습도 구경할만했다. 전날 엄청 많이 땄던 형은 전부 다 잃었다(도박이 그런 것이다). 반면 처음 해보는 친구 녀석은 8배를 땄고, 나에게 팁(?)도 줬다(이래서 옆에서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누군가에겐 열불나는 시간)을 보내고 나와, 택시를 타고 호안끼엠 호수로 향했다. 사실 호안끼엠 호수와 구시가지는 8년 전 하노이에 왔을 때 다 둘러본 곳이다. 하지만 그때는 없던 맥주 거리가 생겼다고 했고, 함께 한 형은 하노이가 처음이라 한 번은 구경해 봐야 할 곳이기도 했다. 




하노이 구시가지는 8년 전보다 더 정신없고 복잡해져 있었다. 금요일 밤이라 그럴 수도 있고, 공연이 있는지 거리를 막고 설치되어 있는 무대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6시 이후부터 길을 막고 생기는 맥주 거리에서 시원한 호프 한 잔 할 계획이었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호주 주변 식당에서 피자에 음료수 한 잔 하고 나왔다. 



계속 우리를 안내해 준 형을 만나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바가지 택시였다. 보통 택시의 기본요금이 5,000동에서 7,000동으로 시작하는데, 이 택시는 60,000동으로 시작했고, 미터기는 빨리 올라갔다. 택시를 세웠다. 그러자 이 친구는 지폐와 바디랭귀지로, 미터기로 안 할 테니 300,000동으로 목적지까지 가자고 (이야기 하는 듯) 했다. 그 역시 큰돈이다. 우리는 매몰차게 내렸고, 기사는 베트남 말로 뭐라 뭐라 하고는 가버렸다(하노이 가시는 분들 택시 탈 때 꼭 요금 확인하시고 타시길).


우리를 계속 안내해 준 형을 만나 저녁을 먹으러 갔다. 처음으로 한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쭈삼과 코다리 찜!! 오랜만에 한국에서 느꼈던, 혀의 통감을 자극하며 느껴지는 매운맛을 경험했다. 베트남 한인회 회원이신 분이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우리를 안내해 주고 있는 형이 설명해 줬다. 


내일은 비행기에서 1박을 할 것이기 때문에, 이 날이 하노이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소주와 쭈삼으로 배를 채운 우리는, 마지막 이 밤을 어디서 불태울지를 고민했고, 장고 끝에 결국



숙소로 왔다... 면세점에서 사 온 소주가 냉장고에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이 날 술자리의 주제는 가족과 사랑이었다. 각자의 가족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답이 없는 주제지만, '이런 고민도 있을 수 있구나'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김민식 PD님의 블로그 글을 읽다가 인용된 문구를 적어 놓은 것이 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은 상대와 얼마나 잘 지낼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불일치를 감당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톨스토이>


이 말이 정답인 것 같다. 아내와 나의 맞지 않는 부분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느냐... 그런 노력의 유무가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도, 그렇지 않게도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결혼'을 '친구', '사회', '조직' 등으로 바꿔 적용해도 틀리지 않은 말이다. 


이렇게 철학적이면서도 생활밀착형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하노이에서의 마지막 밤은 깊어갔다. 





#. 1 카지노에 돈을 다 기부하고 온 형은 youtube로 관련 영상을 보며 공부했다. 아니, 분노를 삭였다.




#. 2 우리를 가이드해 주는 형은 밤늦게 귀가했다. 아파트에 도착해 보니 모든 엘리베이터가 점검 중이라 30층까지 걸어 올라갔고, 집에 도착하니 술이 다 깼단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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