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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파마

by Kang.P 2018.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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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어김없이 출근했다. 조국 해방의 의미를 되새기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어야 할 광복절에도 역시 출근 도장을 찍었다. 평일에 일 안 하고 휴일 출근해서 시간외 수당 챙기려는 것 아니냐 따진다면, 너무 억울하고 속상하다. 요즘 나름 워라밸을 추구하며 업무는 되도록 일과 중에 끝내고, 퇴근 후와 주말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 중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휴일에 출근할 수 밖에 없는 건... 일이 많다. 요즘 3가지 업무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주말에 홀로 출근해서 복도 좌우로 늘어선, 마치 벌집처럼 생긴 작은 방들 중 가장 끝에 위치한 방에 불을 켠다. 그렇게 앉아서 일을 하고 있다보니 문득, 국민학교 시절 (난 초등학생이 아니고 국민학생이었다) 텅 빈 교실에 혼자 남아 나머지 공부하는 기분이 들었고, 이런 생각에 미치지자 짜증이 확 올라왔다. 


눈을 질근 감고 마음을 달랜 후 다시 눈떠보니 미용실 의자에 앉아 있었고, 내 입은 파마해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가끔은 이렇게 스트레스받거나 짜증이 클 때, 염색이나 파마로 변화를 주면 다소 기분 전환이 되곤 한다. 그래서 오랜만에 미용실을 찾았다. 너무 뽀글뽀글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파마를 요구했고 사장님은 전문 용어를 섞어가며 어떤 식으로 하겠다 설명해 주었는데, 나는 100% 이해하지 못했지만 "네~"하며 동의해 버렸다.


비닐랩으로 머리를 칭칭 감고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최민석 작가의 '꽈배기의 멋'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파마하는 데는 1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너무 뽀글뽀글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파마를 원했기 때문에 랩으로 싸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파마를 하면서도 파마가 너무 잘 나올까 봐 걱정하는 모순된 상황에 처했다. 


중화할 때는 두 여성분이 내 머리를 가운데 둔 채, 어떤 약품을 쓸지를 놓고 옥신각신했다. 양쪽 귀로 들은 내용을 종합해 보면, 중화 약품은 거품형과 일반 액체형이 있는데, 한 분은 거품형으로, 다른 한 분은 액체로 중화를 시작했다가 서로 토론한 끝에 마침내 하나의 제품으로 통일하는 과정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마치, 미용학원에서 실습용으로 사용되는 머리카락 달린 바스트샷 사이즈의 마네킹이 된 기분이었다.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머리 감으러 가자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피 마시지가 너무 시원했지만 차마 조금 더 해 달라는 말은 못 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다시금 의자에 앉아 거울을 보는 순간, '누구세요?'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우려했던 대로 옆머리 다운 펌이 너무 많이 되었다. 3, 4일은 머리 안 감은 사람처럼 머리카락과 옆머리가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드라이를 하며 최종 점검을 하던 사장님은 "2주 후면 자연스러워질 거예요."라고 했다. 지금 당장의 기분 전환을 위해 미용실에 왔는데, 그것을 2주 후에나 느낄 수 있다니... 스트레스 풀고 기분 전환을 위해 미용실을 찾았는데, 도리어 스트레스가 쌓이고 기분이 다운되는 결과가 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2주 정도 시간이 흐르고 머리가 자연스러워지면, '역시 이 집이 파마를 잘 한단 말이야.' 감탄하며 다음번 머리 자를 때도 이곳을 찾을 것이다. 지금의 이 스트레스와 짜증은 2주를 더 가지고 가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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