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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삼겹살과 놀이방

by Kang.P 2017.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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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때도 그랬지만, 아내가 둘째를 임신하고 나서부터 먹고 싶은 것이 수시로 생기곤 한다. 하지만 첫째 때와 다른 것은 그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17개월 된 딸과 함께 하다보니, 쉽게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큰 맘 먹고 어제 먹고 싶다고 했던 것을 먹자고 하면, 이미 그 욕구는 사라진지 오래... 그래서인지 둘째에게 내심 미안하다. 


오늘은 퇴근하고 오랜만에 외식을 했다. 명절 동안 고생한 것도 있고, 간만에 장모님과 온천 가서 기분좋게 목욕하고 온 아내에게 '저녁 뭐냐'는 짜증 나는 질문을 던지고 싶지 않았다. 집 근처에 있는 종로상회에 갔다. 이곳에 갈 때면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딸아이로 하여금 놀이방을 존재를 인지하게 해서는 안된다.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저녁은 다 먹었다고 봐야한다. 


그러나, 우리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고 놀이방을 발견한 딸아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들었다. 





아내가 좋아하는 삼겹살은 불판 위에서 익어가고 있지만, 우리는 마주 앉아 고기를 뒤집으며 담소를 나눌 수 없었다. 교대로 놀이방의 아이와 놀아주며(라 쓰고 감시라 읽는다.) 돌아가면서 쫓기듯 뜨거운 고기를 식도로 넘겨야만 했다. 프로레슬링에서 태그매치하듯 분주히 교대하는 다른 팀들(?)을 보면서 그나마 위안을 삼았다.



불쌍하다며 놀이방 창문 너머로 아내가 찍어준 사진.



이렇게 삼겹살을 뒤집다 보니, 문득 떠오른 상황이 있다.

철없던 시절, 그러니까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기 전의 이야기다. 친구 혹은 직장 동료들과 술집에서 왁자지껄 잔을 기울이다 보면 외식 나온 가족의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물론 모두의 모습이 그렇지는 않았지만 머리 속 기억은, 먼지를 뒤집어 쓴 작업복 차림의 아빠와 그의 아내와 아들, 혹은 딸... 홀로 앉은 아빠는 연신 고기를 뒤집고, 건너편의 아내는 아이의 입에서 고기 없어질까 먹이기 바쁘다.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가장은 가끔 '탄다, 얼른 먹어', '꼭꼭 씹어 먹어라' 정도의 말만 전할 뿐 말수도 많지 않다. 


본의 아니게 이런 모습을 곁눈질로 훔치면서...

그 가족을 동정했다. 

대한민국의 노동자로 살아가는 우리네 가장의 모습을 보면서, 가족에게는 고기를 먹이지만 정작 본인은 쓴 소주로 배를 채우는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측은한 마음을 가졌었다. 


그런데 말이다...


정작 내가 그런 가장의 위치에 서고 보니, 아내와 교대로 놀이방을 오가며 홀로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상황이 되고 보니, 그 때의 그런 동정이 얼마나 건방졌던 것인지를 알겠더라.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데, 그것을 섣불리 내 깜냥으로 동정하고 측은해 했단 말인가. 


나이가 들수록 순간순간 울컥할 때가 많아진다. 술 취할 틈도 없이 정신 없는 외식을 끝내고, 유모차로 딸을 모시고 집으로 향하면서 이런 생각에 이르자 또 울컥하더라. (이정도면 병인가,,,) 

세상의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를 존경하고, 응원한다. 물론 나와 아내 역시~






모든 부모가 그렇듯,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아이를 보면서 힘 받고, 충전하고 내일도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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