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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사무실이 한산하다.

by Kang.P 2017.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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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사무실이 한산하다. 평소 같으면 빠른 걸음으로 무언가에 쫓기듯 오가던 동료들의 발걸음도 오늘은 여유롭게 들리고, 키보드 자판 두드리는 소리조차 리듬감 있고 경쾌하게 느껴진다. 내 기분 탓에 주변 상황을 이렇게 인지하는 것일지도 모르나, 어쩌면 설 연휴를 앞둔 사람들의 마음이 나와 비슷한 것일 수도 있다.


내일은 연차휴가를 냈다. 작년 연차를 소진하지 못한 사람은 이번달까지 쓰라고 회사는 통보했지만, 결국 3일의 연차는 그냥 사라지게 생겼다. 이런다고 누가 일 열심히 한다 칭찬해 줄 사람도 없고 오히려 자기 권리도 못챙기는 바보라고 혀를 차겠지만, 어쩔 수 없다. 내일의 연차휴가로 남들보다 연휴를 하루 더 즐기는 것으로 위안하는 수 밖에.



너저분한 책상만이 일상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번 연휴에는 무엇을 하며 알차게 보낼까 생각해 보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17개월 된 딸 덕분에 아내와의 오붓한 데이트는 물 건너갔고, 같은 이유로 조용히 독서를 즐기며 마음의 양식을 쌓는 것도 불가능하다. 후배가 준 셜록 시즌4를 정주행 하고도 싶지만 역시나 같은 이유로 시작버튼 누르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

이처럼,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절대갑인 딸이지만, 나는 딸로 인해 행복하다. 특히 요즘은 '아빠, 아빠'를 입에 달고 다니는 모습이 정말이지 너무 사랑스럽다. 한 때는 내가 다가가도 엄마만 찾는 '엄마 껌딱지'였는데, 틈나는대로 놀아주고 장난치고 하는 과정이 누적되면서 아빠에 대한 애정도가 높아졌나 보다.


사람과의 관계도 17개월 딸과 아빠의 그것과 다를바 없어 보인다. 얼마나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함께하느냐가 관계 형성과 유지의 핵심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요즘 나는 참 못 살고 있다. 물리적인 공간이 떨어져 있는 것도 있지만, 먼저 안부 전화 한 통 쉽게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돌이켜 보면 이러한 서로에 대한 소원함이 길어지고 누적되면서 관계가 끊어진 경우도 여럿 있다.

물론 살면서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 이렇게 된다면 결국 '타인의 친구로서'의 '나'의 비중이 커질 것이고, 어떤 행동에 앞서 '나의 이런 행동이 타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를 먼저 고민하게 되는, 객체로서의 나로 전락하게 될 위험이 크다. 물론 그 반대의 극단도 올바른 것은 아닐테고 말이다.


40년을 살아오면서, 특히 20대를 지나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신이 나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고마운 인연을 당연함으로 인식하면서 관계 유지를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이래서 어른은 아이에게서 배운다고 하나보다. 연신 '아빠, 아빠'하는 딸의 모습에서 대인관계에 대한 반성을 이끌어내게 되니 말이다. 이번 설에는 한동안 못했던, 새해인사 전화 한 통씩 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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