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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2024년 어버이날

by Kang.P 2024.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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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집에 오면 줄게."
"난 없어~!"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며 던진 '오늘 어버이날인데, 뭐 없어?'라는 질문에 돌아온 첫째와 둘째의 대답이다. '너는 어린이날에 선물 받을 거 다 받고, 어버이날에는 아무것도 없으면 이건 불공평한 거 아니냐'며 둘째에게 따져도 녀석은 막무가내였고 결국 출근 셔틀 시간에 쫓겨 실랑이를 접고 현관을 나섰다. 
 
어제 회식의 숙취와 지난한 업무,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힘든 하루를 보내고 다시금 퇴근 셔틀에 몸을 실었다. 피로가 풀리기는커녕 되려 눈감은 시간만큼 피곤이 쌓이는 쪽잠을 자며 한 시간 반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별 기색이 없던 아이들은 밥상머리에 앉자 '하나 둘 셋!' 하며 뒤춤에 숨겼던 걸 내밀었다.
 

 
담임 선생님의 노고가 느껴지는 어버이날 카드였는데, 아빠 엄마를 생각하며 카드를 써 내려갔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기특했다. 큰 딸의 카드는 엄마가, 둘째의 카드는 아빠가 집었다. 
 

 
카드를 펼쳐 잡고는 큰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녀석은 본인이 짜증을 많이 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둘째다 보니 언니에 대한 질투가 많고, 그것이 부모 눈에는 사소한 것에 삐치고 별 것 아닌 것에 짜증내는 것으로 보여 혼나는 일이 잦았다. 둘째의 설움을 알기에 다독이며 달래려 노력하지만, 우리도 사람인지라 심신이 지치고 피곤할 때면 뾰족한 말을 던지는 경우가 있어 마음 한 켠으로 미안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아내와 카드를 교환했다. 어우~ 3학년이 되니 큰아이의 글씨도 제법 반듯해졌다(둘째의 글씨를 보고 난 후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마찬가지로 큰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웃음 띤 목소리로 낭독하던 중, '엄마 아빠가 할머니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도 영원히 사랑해 줄게요.'라는 문장을 지날 때, 순간 울컥했다. 정말이지 일찰나에 눈시울이 붉어졌고 목소리가 떨려와 문장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이 무슨 주책인가 싶어 사레라도 들린 양 헛기침을 하며 감정을 추스르곤 나머지 부분을 빠르게 읽어 갔다. 
 
고마웠다. 정말 고마웠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싶을 정도로 고마웠다. 미숙한 부모 밑에서 두 녀석 모두 크게 모나지 않고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줘서 정말 감사하다.
 
좀더 공부 잘하길 바라고,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길 원하는 게 부모 욕심인데, 생각해 보면 어디 아픈 곳 없이 순간순간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내며 올바른 인격을 형성해 가는 게 이 시기의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한참 이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큰아이가 아빠의 최불암 난닝구를 주섬주섬 매만지더니 카네이션을 달아줬다. 
 

 
8천 원짜리도 있었는데, 자기는 돈이 없어서 2천5백 원짜리를 샀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딸아,
이 2천5백 원짜리 카네이션은 아빠에겐 2천5백만 원보다 값지단다. 아빠 엄마의 딸로 태어나줘서 정말 고마워.
항상 사랑하고 언제나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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