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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천 원짜리 샤프

by Kang.P 2023.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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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지난 일이긴 한데, 지난달 말에 생일이 있었다.

 

젊을 때야 사람들과 시끌벅적한 술판을 벌이며 시간을 보냈을 테지만 대략 마흔을 넘긴 시점부터인 것 같다. 가족과 조촐하게 생일을 보내기 시작한 게 말이다.

 

예전만큼 어울릴 이들이 많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왁자지껄 흥겹게 보다는 조용하고 의미 있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도 사실이다.

 

매 년 생일이면 아이들은 정성스럽게 쓴 편지로 선물을 대신했다. 근데 올해는 처음으로 큰 딸이 편지와 함께 물건을 선물로 내밀었다.

 

샤프...

 

생일 며칠 전부터 선물로 받고 싶은 게 뭐냐 묻길래 처음에는 '집'이라고 했다가 혼났고, 현실적인 물건을 찾던 중 '샤프'가 생각났다. 

 

 

나중에 동네 문방구에 가보니 내가 받은 선물과 같은 샤프 밑에 '1,000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있었다.

 

가격은 천 원에 불과하지만 처음으로 딸에게 받은 (종이로 만든 게 아닌 진짜) 물건 형태의 선물이라 남다르다. 

 

아빠의 생일 선물을 위해 얼마 되지도 않는 용돈을 아껴 천 원이라는 자금을 마련해 샤프를 샀을 큰 딸을 생각하니 이 또한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소중히 간직했다가 나중에 딸이 결혼해 자식을 낳고 그들이 대화가 가능해지면 꺼내 보이며, "옛날에 할아버지 마흔여섯 번째 생일 때 네 엄마가 선물해 준 사프란다" 하며 자랑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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