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대상포진이라니...

by Kang.P 2021. 6. 30.
728x90

생애 첫 대상포진 진단을 받았다. 내 나이 마흔넷의 일이다. 일주일 전부터 명치를 기준으로 왼쪽 부위에 찌릿한 통증이 불규칙적으로 발생했다. 그러다 말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흘러도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무릇 모든 병은 '밥 먹으면 낫는다'는 확고한 신념의 소유자로, 여간해서는 병원을 찾지 않는 걸로 (아내한테만) 유명한데 지난 월요일에는 자진해서 병원을 찾았다(나는 겁이 많다). 진료실로 들어가 증상을 이야기했는데, 설명하면 할수록 의사 선생님의 갸우뚱한 고개는 더욱 기울어졌다.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의사 선생님은 이것저것 물어왔고 나는 경찰서에서 조서 쓰는 사람처럼 성실하게 답했다.

한참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간 후, 의사 선생님은 두 가지 경우로 정리했다. 갑작스러운 운동으로 인한 위경련(실제로 첫 통증은 무리한 스트레칭하는 과정에서 나타났었다)이거나,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발생하는 대상포진일 수도 있다고 했다.

"대상포진이라면 많이 아프다던데, 그런 통증은 없었는데요?"
"통증은 개인차가 있을 수 있긴 한데... 음... 아무래도 정황상 위경련으로 의심되네요." 하며 처방전을 작성하다가 "몸에 수포 같은 것은 없죠?"라며 무심히 물었다.
"네, 그런 건 없..., 아, 며칠 전에 등 쪽을 벌레한테 물려서 긁었더니 약간 부은 건 있습니다만, 이게 진료랑 상관이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하며 옷을 걷어 등을 내비쳤다.

대수롭지 않게 쳐다보고 처방전을 이어가려던 의사 선생님은 확장된 동공으로 다시 돌아봤고, 처방전 내용을 지우며 외쳤다.
"대상포진이네요!!"

728x90

그렇다. '아우!! 이놈의 벌레 새끼!' 하며 박박 긁어댄 것은 대상포진의 물집이었던 것이다. 등 뒤라 볼 수 없었고 확인하려고조차 하지도 않았던 게 화근이었다.

군인 아님


대상포진은 초기에 진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적어도 일주일은 경과가 된 것 같았고 그 때문인지 의사 선생님은 일주일치 약의 처방해 주었다. 약국에서 약을 받으며 약사 선생님한테도 부위를 보여주었는데 대상포진이 맞단다.

검색해 보니 칼로 살을 자르는 듯한 통증을 동반한다고 하는데 그런 통증은 없기에 '오진이 아닐까?' 의심도 했지만,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하니 조용히 약 먹으며 지켜봐야겠다.

사십 대 중반에 들어서니 전에 없던 병치레를 하는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궁극적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노력이고 그 중심에는 나와 가족이 있다. 건강을 잃는 것은 모든 행위의 전제가 무너지는 거다.

일터에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뉴스를 접할 때면 내 일처럼 마음이 아프다. 저들이 무엇을 위해 이토록 열심히 일 해 왔을까. 그 행위의 이유인 자신이 사라진다면 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거대한 기계의 작은 부품 취급을 받는다지만 어느 부품 하나 쓸데없는 게 있을 리 없다.

대상포진 진단을 받으며 택배 노동자의 죽음이 떠오른 건 이런 이유에서다. 약을 입에 털어 넣으며 대상포진이 낫길 바라는 마음만큼, 모든 이들이 아프지 않고 가족과 행복한 삶을 영위하며 살기를 기도했다.

반응형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름휴가의 끝  (0) 2021.08.08
시간  (0) 2021.07.21
책 선물  (0) 2021.06.12
하루  (0) 2021.06.01
자존감  (0) 2021.05.3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