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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딸에게 쓰는 편지/큰 딸에게

[쑥쑥이에게] #.46_아빠의 반성문

by Kang.P 2017.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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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딸~

요즘 감기 걸려서 우리 딸이 고생이 많다. 지난 금토 아빠 워크샵 갔을 때, 밤에 열이 40도까지 올라가서 엄마가 혼자 고생 많이 했다고 들었어. 다행이 지금은 열은 떨어졌지만 콧물이 수도꼭지 물 새듯이 줄줄 흐르는구나. 아픈데도 여전히 활발한 모습 보여줘서 감사해.





아빠가 오늘은 반성문을 쓰려고 해. 반성문이 뭐냐고? 앞으로 우리 딸이 자라면서 수도 없이 써야할 것이니까 미리부터 궁금해 하지 않아도 돼... 때가 되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될테니 말이야...


모든 아빠들이 그렇듯이 아빠도 우리 딸이 생기면서 좋은 아빠, 친구 같은 아빠가 되어야지 마음 먹었단다. TV나 주변에서 그런 아빠와 딸의 모습을 볼 때면 더더욱 마음을 다 잡았었어. 그런데 말이야,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더구나. 이쁜 짓할 때야 꺄르르 같이 웃고 딸한테 애교 부리고 장난치고 하는 게 어렵지 않은데, 문제는 우리 딸이 짜증을 부릴 때야. 어쩌면 이런 상황에서 아빠들의 성격과 노력 여부가 나오는 것이겠지. 





특히 이번에 우리 딸이 아프면서 아빠가 정말 많이 반성하게 되었어.

아빠랑 잘 놀다가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을 부리고, 동생 임신해서 힘든 엄마한테 계속 달라붙어서 울고 떼 쓰고... 아빠랑 놀자며 안고 오면 대성통곡을 하면서 엄마만 찾고... 

신이 아닌 이상 이제 17개월 된 아이의 짜증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할테고, 하루 종일 엄마와 지내다 보니 엄마와의 애착형성이 큰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 텐데, 이런 상황에서 아빠가 버럭 화를 냈단다. 


아빠가 화낸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어. 하나는, 하자는 거 다 해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에 화가 났고, 또 하나는 네 동생이 생겨서 엄마가 지금 굉장히 힘들고 예민한 때인데 네가 너무 엄마를 힘들게 하는 것에 화가 났어. 엄마는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거든. 


그런데 말이야... 문든 이런 생각이 들더라... 아빠는 어릴 때,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네 할아버지가 굉장히 무서웠어. 무언가 잘못을 하거나 떼를 부리면 불 같이 화를 내셨고, 그런 상황이 누적되니까 아빠는 네 할아버지를 피하게 되더라고. 아빠 어릴 때 할아버지는 시멘트 회사를 다니시며 교대근무를 하셨어. 아빠는 할아버지가 오후 2시에 출근 하는 날이 가장 좋았단다. 학교 갔다오면 집에 할아버지가 안 계셨거든. 그럼 눈치 안보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놀 수 있었거든... 

아빠가 어른이 되고나서 할아버지랑 술 한 잔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미안해 하시더라. 가장으로서 돈 벌어오기 바빴고, 애들 교육은 할머니에게 맡기다시피 하며 함께 시간을 많이 못가진 것을 후회하시더라. 지금은 아빠도 다 이해해. 왜냐면 어느덧 아빠가 당시의 할아버지 위치에 있거든... 그 위치에 있어보니 당시 할아버지가 어떤 고민을 하셨고, 어떤 힘든 것들을 이겨 나가셨을지 알겠더라.


할아버지와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아빠는 생각을 했단다. 나중에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어린시절 내 경험을 교훈 삼아 친구같은 아빠, 자상한 아빠가 되어야지 하고 말이야. 그런데... 이번에 우리 딸이 아파서 부리는 짜증과 생떼에, 어릴적 그렇게 싫어했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빠에게서 나오더라.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부모가 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어. 특히 아직 대화가 되지 않는 아이에게 화내고, 소리 지르고 하는 것은 아이의 행동을 바꿀 수도 없을 뿐더러 심리적 위축만 초래할 뿐, 부모의 화풀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아.


지난 주말 우리 딸에게 너무 미안한 나머지, 출근해서 앉아있어도 일이 손에 안 잡히더라. 이렇게라도 반성문 먼저 써야 마음이 좀 편할 것 같아서 오전에 주저리주저리 좀 적었어. 좋은 아빠가 되도록 더 노력할께. 있다가 퇴근하고 보자, 우리 딸~~



ps. 지난 번에 집안 대청소 할 때의 영상 보면서 아빠에 대한 서운함을 달래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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