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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주말의 반성

by Kang.P 2023.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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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은 열심히 살고 있었다. 어제 큰 딸아이를 클라이밍에 데려다주고 호암지를 돌 때도, 오늘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으면서도 느꼈다.

아침 9시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호암지를 돌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강아지(?)부터 어르신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각자의 목적에 맞게 걷거나 뛰고 있었다. 몇 개월 만에 호암지를 찾은 나로서는 모두가 나처럼 게으른 주말을 보내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고 반성하게 됐다.
 


일요일 오후에는 집 근처의 중원도서관을 찾았다. 조용히 앉아 책 읽을 곳을 찾았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공부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어렵게 컴퓨터 옆에 자리를 잡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험공부를 하는 듯한 옆자리 여학생을 비롯해 책을 쌓아놓고 읽고 있는 초등학생, 형광팬으로 줄을 그어가며 몰두하고 있는 주부, 미간을 찌푸리며 코에 걸린 안경 너머의 글귀에 집중하고 있는 백발의 어르신까지…

어쩌다 한 번 호암지를 돌았고 어쩌다 한 번 책이라도 읽을 요량으로 도서관을 찾았는데, 그곳에는 이것이 일상인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각자의 목적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에서 부유하고 있다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졌다. 회사 업무 관련 고민과 개인의 성장, 인생 2막을 위한 고심이 많지만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없었다. 그저 한숨 쉬며 ‘아, 어떡하지?’ 하며 천장만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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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을 뒤로하고 도서관에서 빌린 <언어를 디자인하라(유영만, 박용후 저)>라는 책을 읽어 내려가는데, 한 문장이 멱살을 잡으며 독서를 중단시켰다.
 
‘범인’이라는 단어에 대한 객관적인 사전의 뜻풀이와 고정관념을 깨고 개념을 재정리한 사전의 뜻풀이를 다루고 있었는데, 전자는 ‘1. 보통사람, 2. 하찮은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었고, 후자는 ‘스스로를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거나 공명심을 갖고 있지 않거나 해서 다른 것에 대한 영향력이 전무한 채 일생을 마치는 사람 또는 가정제일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는 대다수 서민이라는 뜻’으로 정의하고 있었다.

나만의 개념사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예시였는데, 하필이면 범인이라는 단어를 다뤘고 후자의 정의는 ’허허, 이건 똑 자네 이야기가 아닌가~‘ 하며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특히 ‘가정제일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는 대다수의 서민’이라는 말이 의표를 찔렀는데, 사실 난 아이들이 태어난 후부터 가정이 최고의 가치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나의 게으름과 직업적 사명을 외면하려는 마음을 정당화시키는 방어기제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정을 최고의 가치로 쳐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전히 나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가 가족임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이것을 핑계 삼아 해야할 것들을 내치고 있는 게 문제다.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주말 이틀 동안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자극을 받았고 책 속의 강렬한 문장 하나가 나를 벌거벗겼다. 부디 이 자극과 수치스러운 깨달음이 내 삶에 작은 변곡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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