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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혈압약과 의리(?)

by Kang.P 2023.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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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를 돌아보면 반가웠지만 힘들었고 기뻤으나 피곤한 시간들이었다. 일주일 전 속초 여행에서 근 이십 년 만에 만났던 대학 후배를 이번 주에 충주에서 다시 만났다. 기분 좋게 한 잔 하며 해후를 즐겼고 어김없이 다음 날에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또한 방문진의 지역방송발전지원사업의 결과 발표도 주중에 있었는데 최종 합격의 기쁨도 잠시 '이제 이것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걱정이 커졌다. 금요일에는 충주를 시작으로 청주 - 보은 - 단양 - 충주에 이르는 대장정도 있었으니 돌이켜 보면 여러모로 고된 한 주였다. 
 
그래서 이번 주말은 특별한 이벤트 없이 휴식과 정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가장 먼저 몇 개 남지 않은 혈압약을 다시 타 와야 했다. 주중에는 청주로 출퇴근하느라 시간을 낼 수 없어서 주로 토요일 오전에 병원을 찾는다. 집 옆에 내과의원이 있는데 사람도 많지 않고 의사 선생님도 친절해서 항상 이곳에서 혈압약 처방전을 받아왔다. 
 
그런데 진료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아무리 전화를 해도 통화가 되지 않았다. 검색해 본 아내는 요즘 진료를 안 본다는 글이 많다고 했다. 토요일은 대부분의 병원이 오후 2시까지만 진료를 보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졌다. 
 
결국 다른 동네에 있는 내과를 찾았다. 복용 중인 혈압약을 보여 주며 같은 약을 요청했지만 처방전에는 같은 성분의 다른 제품이 적혀 있었다. 제약회사 영업사원과의 관계가 있었으리라. 
 
처방전을 들고 나오며 원래 다니던 병원의 약을 처방했던 약국에 전화했다.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니 약사님은 그 제품을 주문해 놓겠다며 오후 1시 전후로 도착할 것 같은데 괜찮겠냐고 되물었고 나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전화를 끊었다. 
 
아니, 엄연히 처방전 받은 병원 주변에도 약국이 있을 텐데 왜 굳이 이런 불편을 자초하냐,며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거다. 불편함을 감수하며 이렇게까지 한 건 평소 약사님에게 가지고 있던 신뢰와 그에 따른 의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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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약사님은 약을 타러 갈 때면 항상 몸의 상태를 물어보고 체크한다. 혈압약을 탈 때마다 요즘 혈압 수치를 묻고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친절히 설명했고, 대상포진으로 약 처방을 받을 때는 부위를 보며 주의해야 할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단순히 의사의 처방대로 약만 제조하는 수동적인 약사가 아니라 자신의 일에 대한 사명감과 환자에 대한 진심이 전해지는 약사였다. 
 
그러니 친절하지 않을 수 없었고 반복된 친절과 전문적 소견에 신뢰가 쌓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쌓인 신뢰는 의리로 발전했다. 
 
병원이 몇 주 째 진료를 안 본다는 건 환자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것은 약국에게도 치명적이다. 병원과 약국은 새의 양 날개와 같다. 병원이야 나름의 사정으로 어쩔 수 없다지만 약국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래서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작은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이 사람 참, 의리 있네'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지만, 핵심은 의리가 아니라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고객의 발걸음을 움직이게 한 약사님의 힘이다. 그 힘은 '진심'과 '신뢰'였다. 사람 관계에서 가장 기본이라 생각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이 또 이것이다.
 
통화를 마치고 가족과 주말 기분도 낼 겸 얼마 전 집 근처에 생긴 노브랜드버거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아내의 투철한 쿠폰 정신 덕에 반 값으로 네 식구가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마칠 즈음 약이 도착했다는 약사님의 전화가 왔다. 지척에 있었기에 바로 달려가 약을 받았다. 약사님은 오로나민씨를 건네며 진료 받은 병원 근처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약을 굳이 여기까지 와서 사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고, 나는 약을 구해줘서 감사하다는 말로 응수했다. 
 

처음 가 본 노브랜드버거
큰 딸과 함께~ㅋㅋ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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