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섬집 아기

by Kang.P 2023. 4. 29.
728x90

다른 집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집 아이들은 유독 엄마와 끈끈한 애착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 관계가 얼마나 견고한지 아빠는 언감생심 끼어들 틈이 없다. 나름 한다곤 했지만 그럼에도 어린 시절 아빠와 교감이 (엄마에 비해) 많지 않았던 탓일 거다. 
 
애들은 어려서부터 엄마 껌딱지였고 지금도 그렇다. 아내가 친구라도 만날라 치면 아이들이 잠든 틈을 타 신경을 곤두세우고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둘 중 하나라도 깨는 사단이 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안 해 버릇해서 그런 거라고, 자꾸 해 봐야 아이들도 엄마와 분리 정서를 만들어 간다고들 이야기하는데 아내는 마음이 여려서 아이를 두고 매몰차게 나가지 못한다. 물론 남편에 대한 불신이 결정적 이유일 것이다. 
 
이를 극복하고자 엄마들은 빼고 아빠 셋이서 아이들과 1박 2일로 여행 간 적도 있었는데, 술에 취한 나머지 엄마 보고 싶다며 우는 아이를 옆에 두고 혼자 잠들어 버렸다. 엄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고 아빠와의 관계 형성을 위해 떠난 여행은 오히려 애들에게 트라우마만 남겼다.

반응형

그러던 중 며칠 전,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오랜만에 아내가 친구와의 저녁 약속이 잡혀서 아빠가 아이들을 재우기로 한 것. 아내는 하루 전부터 아빠랑 같이 자고 일어나면 엄마가 옆에 있을 것임을 주지시켰다. 두 아이도 마치 큰 결의라도 하는 표정으로 알겠다며 끄덕였다. 
 
하지만 그 날 밤, 둘째는 어김없이 엄마 보고 싶다며 목 놓아 울었고 '그래도 언니는 다르네' 하며 큰 딸을 돌아보니 녀석도 이불 속에서 소리 죽여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아빠 대신 엄마가 옆에 있을 거라고 다시 한 번 약속하고 몇 번의 몸개그로 웃겨줬다니 다행히 잠이 들었다.
 
'엄마가 그렇게 좋을까?' 혼잣말을 하며 아이들 방을 나오는데, 순간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는 옛 기억이 있었다.   
 
유년 시절에는 가세가 기울면서 이사를 많이 다닌 시기가 있는데 그 중 사글세 단칸방에 살던 때가 있었다. 화장실도 공동으로 써야 하는, 말 그대로 방 하나와 연탄아궁이가 있는 주방이 전부인 단칸방이었다. 큰 나무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운데 수돗가를 두고 ㅁ자 형태를 한 옛 건물이었는데 방마다 사글세를 준 것이다. 동네에서는 이 집을 '나무대문집'이라고 불렀다. 
 

출처 : 카카오맵

반갑게도 카카오맵 로드뷰에서 나무대문집을 찾을 수 있었다. 2010년도 로드뷰인데 나무대문은 철문으로 바뀌어 있었고, 지금은 주거시설이 아닌 구옥을 리모델링한 상점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당시 아버지는 시멘트 회사에 다니시면서 분재원을 하셨다. 아버지는 분재를 엄청 좋아하셨는데 결국 취미가 사업이 된 것이다. 부모님은 분재원에 집중하셨고 나와 동생은 나무대문집에서 할머니와 주로 지냈다. 
 
엄마가 집에 오시는 시간은 대중 없었는데 대부분 저녁 늦은 시간에서 밤 사이였다. 핸드폰도 없던 그 시절에는 엄마가 오실 시간이 되면 두 형제는 나무대문을 열고 나와 집 앞 가로등 밑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시점에서 당시의 모습을 생각하면 두 형제의 모습이 처연하고 애처롭다. 노란 가로등 불빛 아래 쪼그리고 앉아 있던 우리는 저 멀리 어둠 속에서 사람의 움직임이 느껴지면 '엄마!!' 하며 내달렸다. 가서 보면 엄마가 아니기 일쑤. 머쓱해진 우리는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듯 다시 가로등 밑으로 뜀박질했다. 
 
이렇게 엄마를 기다릴 때면 동생과 함께 부르던 노래가 있었는데, 바로 '섬집 아기'다. 지금도 섬집 아기를 들을 때면 나무대문집 앞 노란 가로등 밑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 우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마도 노래 가사가 우리 처지와 비슷하게 느껴졌나 보다. 굴 따러 간 엄마를 기다리다 지쳐 팔 베고 스르르 잠드는 아기의 모습이 마치 어둠을 뚫고 엄마가 나타나길 간절히 바라며 가로등 아래 움츠리고 앉아있는 우리의 모습을 노래하는 것 같았다.
 

나무대문집 옆의 남매슈퍼. 사장님이 우리를 많이 귀여워 해줬던 기억이 있다. 출처 : 카카오맵

 
어린 두 형제에게 엄마는 그런 존재였다. 분재원 때문에 엄마와 함께하는 물리적 시간이 줄어들면서 더욱 보고 싶고 그립고 절실했다. 
 
딸들에게 아내도 그런 존재인 것이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말처럼 아이들은 그들의 희로애락을 엄마와 함께 교감하며 위로 받는다.
 
아이들의 엄마에 대한 집착이 가끔 서운하기도 하지만 어릴 적 나는 이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기에 서운해도 할 말이 없다(왜 어른들이 '너랑 똑같은 자식 낳아봐야 정신 차린다'는 말을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 
 
비록 엄마를 따라 잡을 순 없겠지만 아이들과 친해지려는 아빠의 노력은 오늘도 진행형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zJv_IgY6DNs 

 

반응형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애 첫 책 출판  (0) 2023.05.14
2박 3일 노동절 연휴  (2) 2023.05.03
라면 예찬  (0) 2023.04.21
퇴사와 이직  (0) 2023.04.12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잠실의 추억  (0) 2023.04.0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