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누전 차단기

by Kang.P 2012. 11. 26.
728x90




지난 목요일. 

바람이 매우 차던 그 날은 퇴근하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곤, 옷깃을 한껏 여미고 계단을 뛰듯이 올라와 현관문을 열어야 했다. 겨울임을 느낄 수 있는 바람이었다. 현관을 열고 들어왔으나, 냉기는 밖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좀 아껴보자는 생각에 올 해는 보일러를 최대한 안 돌리려고 노력하고 있었기에 이 날도 어김없이 출근하며 보일러의 온도를 낮춘 것이 아니라, 아예 꺼버렸던 것이다. 


신발을 벗고, 거실 전등스위치를 켰는데, 어라... 불이 안들어오네... 그것을 인지하곤 어둠 속을 둘러봤다. 어둠 속이지만, 눈에 들어와야 할 불빛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전날 저녁 저녁을 해 먹었기에 적어도 밥솥의 보온이라는 글자 위의 빨간불은 눈에 들어와야 했다. 그러나 그것 조차 없었다.


정전인가...


현관을 다시 열고, 옆집을 살폈다. 

내 옆 집도, 반대편 옆의 옆집도 불이 들어와 있었다. 


이쯤되면 돌아봐야 할 것이 누전차단기.


하지만 앞을 비출만 한 것이 없었다. 아이폰의 빛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스탠드!!! 






얼마 전 침대에 누워서 책 좀 읽다가 우아하게 잠들고 싶어서 외계인 눈처럼 생긴 스탠드를 하나 샀었다. 

이런 걸 유비무환이라 해야 하나...








역시나 차단기는 내려가 있었다. 

이사 올 때 가구 나르다가 스위치가 뿌러지는 바람에 나무젓가락을 이용해서 어렵게 전원을 올렸다. 


다행이 불이 들어왔고, 다시금 집이 주는 평안함을 되찾고 침대에 누워 티비를 보며 하루의 피로를 풀고 있었다. 

그렇게 30분 정도 지났을까... 

'탁'하는 소리와 함께 차단기가 다시 내려갔다. 귀찮음이 몰려왔다. 다시금 외계인 눈 스탠드를 들고 가서 어렵게 올렸으나, 이번에는 바로 떨어졌다. 


사태의 심각성이 느껴졌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어떻게 해야하나. 한전에 전화해야 하나. 6시 이 후에도 일을 하던가. 그러던 중 전기일을 하는 친구가 떠올랐다.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친구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며 하라는대로 했다. 그 결과 냉장고가 문제라는 것을 찾아냈고, 냉장고의 전원을 뽑고 차단기를 올리자 다시금 전기가 들어왔고, 오늘까지 그 상태로 잘 지내오고 있다. 


안그래도 전부터 냉장고가 좀 이상했는데, 그것을 그냥 방치한 것이 지금의 사태를 불러왔나 보다. 


전기는 문제 없이 잘 쓰고 있으나, 냉장고를 4일 이상 방치한 상태라 오늘은 퇴근하면서 냉장고 청소를 다짐했다. 

다짐을 하고 현관문을 열었으나, 막상 대면하게 되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사진은 냉동실을 반정도 비운 상태,,,




그동안 먹고 남는 것은 무조건 얼려놨기에, 냉동실의 양은 상당했다. 그것들이 녹은 상태로 3일 이상 방치되자, 부패를 시작해 냄새가 솔솔 올라왔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꺼내들고 하나 둘 담기 시작했다. 수 개월 전 엄마가 집에 가면 해 먹으라며 담아준 불고기도 눈에 띄었다. 죄송했다. 







쓰레기 봉투 하나를 다 채워갈 때쯤, 음식을 해 먹는 것보다 사 먹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물론 자주 해 먹으면, 훨씬 저렴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다 한 번 해 먹는 나로서는 남는 것은 무조건 얼려 버렸던 것이다. 

음식을 버리려니, 죄 짓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버린 것이 2리터 짜리 봉투 두 개를 꽉 채웠다. 











냉동실을 싹 비웠다. 

깨끗한 모습에 기분은 좋아지는 듯 했다. 

내친김에 싱크대에 수북히 쌓여있던 것들을 설겆이했다. 








그 때 그 때 처리하면 큰 힘이 안들 것을 왜 이리 하루하루 미루게 되는지, 참...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지난 주말에는 친한 형 결혼식에서 형수에게 선물할 영상을 촬영했었다. 

오랜만에 한강변에 나가서 친구 몇 명과 서로 서로 아이디어를 내며, 깔깔거리며 재밌게 촬영을 했다. 

이런 영상을 촬영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유부녀가 된 후배녀석은 깔깔대며 한마디를 던졌다.


"다들 늙어가는데, 오빠들만 아직 대학생인 거 같아..."


칭찬인지, 욕인지는 모르겠지만, 칭찬으로 해석하기로 했다. 

물리적인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어차피 하루 하루 살아가는 거, 즐겁게 웃으며 사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렇게 즐겁게 토욜날 촬영을 마치고, 오랜만에 친구들과 술 잔을 기울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래도 생활공간이 다르다 보니, 대학시절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페이스북에 그들의 모임 사진들이 올라올 때면,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숨길 수 없었다. 


그렇게 즐거운 주말을 보냈고, 한 주를 시작하는 오늘은 미뤄왔던 집안 청소, 빨래 등을 하고 나니 보람차다. 


며칠 간 냉장고를 잘 말렸고, 이제 남은 것은 전원을 다시 꼽아야 하는데, 다시금 차단기가 떨어질까 겁이 나서 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도 떨어진다면, 냉장고를 바꿔야하는 것인가,,, 


20살부터 시작된 기나긴 자취생활... 이제는 그 종지부를 좀 찍고 싶다,,,



 






반응형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년 1월 1일  (0) 2013.01.01
강남행 버스  (0) 2012.12.07
1분  (0) 2012.11.05
10월의 마지막 날...  (0) 2012.10.31
궁즉통  (0) 2012.06.1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