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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1분

by Kang.P 2012.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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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과의 통화는 1분이 채 넘지 않았다. 



평소보다 일찍 출근한 덕인지,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주체할 수 없는 피곤함이 밀려왔다. 

꿀잠이라고들 표현하지... 10, 20분 정도 잤을 뿐인데, 자고 나서 날아갈 듯한 개운함을 느끼게 하는 그런 잠을...


오랜만에 그런 꿀잠을 경험하고 책을 집어 들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김민식 PD님의 쓴 '공짜로 즐기는 세상'이라는 책이다. 본인 스스로 활자중독자라고 하는 그는, 말 그대로 '수불석권' 그 자체인 듯 했다. 그런 방대한 독서량 덕분인지, 그의 글은 읽기 쉬웠고 유머가 넘쳐서 쉽게 책장이 넘어갔다. 무엇보다 여러가지로 동기부여가 많이 되는 책이었다. 처세술을 논하는 책은 아니지만, 그 특유의 낙천적인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나의 삶의 자세를 돌아보게 되는 건 사실이었다. 


하룻밤에 책 한 권을 뚝딱 해치우는 친구들을 보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놀라워 하는 나다.

그만큼, 책 읽는 속도가 느리고, 여간해선 깊숙이 빠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독서가 매우 산만하다. 몇 장 넘기고는 덮고 딴짓하다가 다시 펼치고...


이 책은 참 재밌음에도 불구하고 이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네...

침대에 누워 몇 장을 넘기고 책갈피는 꽂아놓고는 티비 켰다가 폰 만지작거리고 하는 찰라에 전화벨이 울린다. 


친구놈이다. 


지난 주말에 고향에 갔었는데, 연락하라고 한 잔 하자고 했던 친구인데, 막상 집에 도착하니 피곤하고 또 아버지, 동생과 집에서 한 잔 하다보니 늦어져서 아예 연락을 안했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귀차니즘이랄까...


목소리를 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1분.


딱 1분 통화를 했다.



"여보세요?"

"나다, 뭐하냐?"

"집이지... 너는??"

"술 먹는다."

"술 좀 작작 먹어라~~"

"접대자리야... 좀 있다가 도망갈꺼야..."

"그렇구나... 접대... 그것도 참 못할 짓이다... 많이 마셨어?"

"응... 좀 있다 들어갈꺼야..."

"그래... 얼른 일찍 들어가라..."

"응..."



1분 남짓한 시간 속에서 우리가 나눈 대화는 이것이 전부.


술취해서 전화할 때면 항상 육두문자를 남발하던 놈인데, 오늘은 많이 마셨음에도 바른말 고운말만 쓰는 녀석의 모습이 어색했다. 


그렇게 짧은 통화를 마치고, 다시금 책을 집어 들었으나, 활자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친구와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소위 말하는 알친구지. 사춘기를 거쳐 방황하는 모습도 보고, 대학생활, 직장생활도 지켜봤던 친구다.

운동도 많이 했고, 성격도 남자다워 학창시절 싸움도 좀 했었고, 사업하면서도 본인이 아니다 싶으면 쳐버리는 배포있는 친구이다. 


그런 친구의 오늘 통화는 좀 이상했다. 뭔가 목소리에 힘이 없고, 전화상으로 약속을 잡고자 한 것도 아니고, 짧게 서로 목소리만 듣고 끝난 전화통화... 물론 나도 그럴 때가 있다. 술 많이 먹으면, 친구놈한테 전화해서 별 내용없이 그냥 몇마디 주고 받고 끊어버리는...


이런 나의 경험에 빗대어 보면, 이 친구는 지금 힘든거다. 


나야 뭐 아직 지지리 궁상, 솔로지만, 딸 둘을 둔 한 가정의 가장이 느끼는 무게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이겠지...

특히나 돈 벌로 러시아 갔다가 잠시 귀국한 상태고 조만간 또다시 러시아로 가야한다, 이 친구는...

돈을 위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족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생활은 순위 밖으로 미뤄 놓는 모습...

뭐, 티비 드라마에서 많이 봐온 4,50대 가장의 전형적인 모습이다만, 내 친구의 모습과 디졸브가 되니 씁쓸하다.  



남자의 인생 참, 거시기하다.(물론 여자 입장에서도 충분히 거시기 할 것이다.)


마음은 10, 20대의 그것인데,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받는 압박감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상당한 것이리라. 


수십분 통화하며 구구절절 하소연하기 보다, 1분이 채 안되는 짧은 대화 속에서 친구의 심정은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러시아 가기 전에 꼭 한 번 만나 한 잔 기울여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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