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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둘째의 서러움

by Kang.P 2022.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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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천명 D-1,518

 금연 D+87

 

큰 딸이 폐렴에 걸리면서 5일이 넘게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 신기한 건 몸에 열이 나면 축 늘어지거나 짜증을 내는 등 아픈 티가 나야 하는데, 어떻게 된 게 평소보다 더 에너지가 넘치며 잘 논다. 불행 중 다행이다.

 

폐렴이지만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잘 노는 모습에 가장 신난 건 둘째다. 언니가 아프다고 들었는데 그럼에도 자신과 잘 놀아주니, 이렇게 고맙고 신날 때가 또 있겠는가(물론 큰 딸이 동생을 위해 안 아픈 척할 정도로 배려심이 깊거나 이타적이진 않다. 그냥 놀 만한 거다).

 

이렇게 둘이 신나게 노는 것에도 주기가 있다. 어느 정도 놀다 보면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둘 중 하나가 '엄마'를 찾는다. 그리곤 누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설명이 이어진다. 이후의 경우의 수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한쪽이 사과하고 다시 잘 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화해하지 못하고 따로 노는 상황이다. 그러나 후자도 오래가진 못한다. 그렇게 따로 놀다가 누군가 먼저 용기를 내 말을 걸면 언제 싸웠냐는 듯 하하호호다. 

 

문제는 이런 싸움을 중재하는 과정에서 종종 발생한다. 아내는 내가 너무 큰 딸 편만 들어서 그렇다며 나무라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억울한 게 많다. 대화로 상황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둘째의 고집이 너무 세다. 물론 어느 정도의 고집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육아 관련 책에서 배운 대로) 인내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듣고 대화하려고 하는데, 이 친구는 수틀리면 입을 닫아버린다.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아무도 너의 생각과 기분을 알 수 없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하는 것도 용기야' 이야기하며 차분하게 대화를 시도해도 앙다문 입과 흰자만 남은 눈에는 변함이 없다.

 

말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추궁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자발적으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두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판단을 내려 상황을 정리해 줘야 하는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 정도 상황에 이르면, 철부지 아빠는 "알았어. 계속 그럴 거면 니 맘대로 해." 하며 체념하듯 쏘아붙이고 (이렇게 하지 말라고 오은영 쌤이 이야기했는데, 난 아직 멀었다. ㅜ,.ㅠ) 둘째는 참았던 감정을 울음으로 폭발한다. 그런 아이를 안고 일어나 달래면 그제야 자신이 왜 그랬는지 서럽게 쏟아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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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이런 행동을 둘째의 피해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집에서 둘째는 정말 둘째 밖에 없다. 나와 아내도 장남 장녀이고 큰 딸은 두말할 나위 없이 장녀이니 말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적으로 떠오른 건 옷과 신발이다. 같은 성별이다 보니 언니가 입다가 작아진 옷들 중 깨끗한 것은 동생이 물려 입는 게 당연하고 합리적인 행위다. 신발 역시 마찬가지. 물론 그렇다고 둘째가 모든 옷을 물려 입지는 않는다. 언니와 같은 옷을 맞춰 입기도 하고, 둘째만을 위한 옷과 신발을 사 주는 게 훨씬 많다.  

 

그럼에도 언니가 입던 것을 자신이 입는 행위,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행위 자체가 둘째에게는 피해 의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피해 의식은 언니와의 관계 중에 뭔가 공평하지 못하고 억울한 상황과 마주할 때마다 순간순간 튀어나올 것이고, 이런 행동이 부모를 비롯한 제삼자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똥고집으로 보였을 것이다. 

 

언젠가 명절에 가족이 모였을 때는 동생이 그런 말을 했다. 둘째 조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건 본인밖에 없을 거라고. 뭔 소린가 싶어 둘러보니 놀랍게도 그 자리에 앉아있는 아홉 명 중 둘째라고는 동생과 우리 둘째 딸, 단 둘밖에 없었다. 

 

 

내가 겪어보고 처해보지 못한 상황이라 고민도 없었다. 밖에서는 마치 현자인 양 그렇게 역지사지를 이야기고 다니면서 정작 집에서는 둘째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으니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진다.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공감하고 행동의 이면을 보려고 노력해야겠다. 

 

이렇게 조금씩 어설프지만 아빠의 모양을 갖춰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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