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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친구

by Kang.P 2019.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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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정도 된 것 같다.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시간이. 그리고 나는 지금 충주로 내려가는 버스 24번 자리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 송년회 자리에 참석했다. 아무래도 지방에 있다 보니 서울에서 하는 모임 자리에는 참석이 힘들었고, 아빠가 된 후에는 더욱 그랬다. 그럼에도 올해는 친구들 얼굴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에 참석하기로 결심했다. 주중에 예매를 했음에도 서울에서 내려오는 버스는 11시 막차뿐 아니라 밤 9시 이후는 모두 매진이었다(이렇게 많은 충주 사람들이 주말이면 서울로 향하는지 미처 몰랐다). 선택의 여지없이 9시 차를 예매했다. 약속 시간이 오후 5시였고, 동서울에서 9시 버스를 타려면 8시에는 일어나야 했기에 3시간은 함께 할 수 있겠다 예상했는데, 올라가는 차가 막혀서 결국 6시 다 된 시간에 합류할 수 있었다.

학창 시절 우리 지역은 비평준화여서 시험을 보고 성적에 따라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자랑처럼 들리겠지만, 당시 지역의 이름을 딴 우리 고등학교는 나름 명문이었고, 특히 우리 반은 문과반 중에서도 특수반, 즉 성적이 좋은 학생들만 따로 모아 놓은 반이었다. 그렇다 보니 친구들이 대부분 서울로 대학을 갔고, 지금은 방귀 점 뀐다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서울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친구들끼리 자주 만나곤 했는데, 그때 당시 나는 학생회 활동을 하느라 자주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도 친구랍시고 모임 있을 때마다 연락 주고, 어쩌다 한 번 참석할 때면 친구들은 서운하다며 자주 나오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기분 좋은 으름장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서 충주로 내려오다 보니, 모임 자리에 참석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거리 상의 이유를 핑계로 삼았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겠다. 그래서 많아야 1년에 한두 번 보는 친구들인데, 친구란 게 원래 그런 건가 보다. 아무리 오랜만에 봐도 어색하지 않고, 학창 시절 주고받던 쓰잘대기 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박장대소하고 있는 우리를 보니 말이다.

특히 오늘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이십 수년만에 만난 친구가 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 친구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수능을 보고 논술 시험을 보러 서울에 갈 때 그 친구의 아버님 차를 얻어 타고 갔다. 나를 먼저 학교에 내려주신 아버님은 길이 막혀 정작 자신의 아들은 시험장에 늦게 도착해 시험을 볼 수 없었다. 오늘도 그때 이야기를 하니, 친구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고 그날 아버지는 아들과 해장국에 소주 각 일병씩 마시며 아들에게 부탁하셨다고 한다.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친구들과 그리 대소롭지 않은 대화를 주고받음에도 무언가 위로받는 기분이었고, 잘 살아야겠다는 동기부여마저 됐으니, 이건 분명 친구이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생각해 보면 이런 동기부여의 이유는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친구가 돼야겠다는 다짐 때문이 아니라, 이들을 만남으로써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며 열정을 불태웠던 고 3 시절의 나와 대면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저 깊은 곳 어딘가에 잊혀있던 그 시절의 열정과 노력 말이다. 

기분좋은 자극이다. 친구란 그런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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