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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자급자족의 꿈

by Kang.P 2019.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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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오랜만에 텃밭에 가서 농작물을 수확해 왔다.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신경을 못 썼더니 잡초도 무성해졌지만, 농작물도 탐스럽게 결실을 맺고 있었다. 대파도 제법 먹을 만큼 자라 있었고 고추도 두 손 가득 따왔다. 사실 이런 수확의 재미도 8월이면 끝난다. 회사 선배의 땅에서 무상으로 농사(라면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이 땅이 팔렸다. 어디 한번 시작해 볼까 하는데 끝나버린 것 같은 허탈한 마음이지만, 어쩌랴, 내 땅이 아닌 것을...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주말농장을 결심한 것은 아이들이 흙과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손으로 흙을 만지고 직접 농작물을 수확하면서, 먹는 것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는데, 정작 아이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방울토마토 수확할 때나 좀 즐거워하려나). 반면 내가 즐겁다. 수시로 가서 물을 주고 주변의 잡초를 뽑아주고 때에 맞게 지지대를 설치해 주면서 조금씩 자라고 있는 식물을 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실 오늘은 수확해 온 채소를 기반으로 우렁쌈밥을 해 먹기로 했다. 고추, 대파, 상추 등을 뽑아서 집에 오니 아내는 대패삼겹살로 만든 간장 제육볶음과 우렁쌈장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상추와 고추를 얼른 씻어 밥상에 올리자 훌륭한 쌈밥 정식이 한상 차려졌다.

맛있었다. 아내가 만든 우렁쌈장과 제육볶음이 맛있고, 농약 하나 안 치고 수확한 쌈채소와 청양고추는 그 향과 매콤함이 돈 주고 사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돈 주고 사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실 주말 농장의 이유 중 하나는 '자급자족하는 삶'에 도전해 보고 싶어서이다.

어릴 적의 기억이다. 친구들과 놀다가 해거름에 집에 오면 맛있는 된장찌개(아니면 김치찌개) 냄새가 반겨줬고, 엄마는 나를 돌아보며 파 두 뿌리만 뽑아오라고 하신다. 그럼 마당에 나가 실한 놈으로 두 뿌리 뽑아다 드리면서 계란 후라이가 먹고 싶다고 앙탈을 부린다. 엄마는 어제도 먹었지 않냐며 핀잔을 주시지만 결국 못 이긴 척 가서 세 개만 꺼내오라며 허락해 주신다. 닭장에 들어가는 게 무섭지만, 작대기로 닭을 코너로 몰며 조심스럽게 계란을 꺼내온다.

필요한 건 모두 마트에 있는 요즘이지만, 최소한의 것들은 옛 추억처럼 자급자족하며 살고 싶다. 그걸로 얼마나 큰 경제적 이득을 얻겠냐마는, 지갑 들고 마트로 달려갈 필요 없이 집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심리적 안정감과 성취감을 얻을 것이고, 이것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일 것이다.

오늘의 우렁쌈밥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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