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과 여드름
퇴근하고 네 식구가 둘러앉아 저녁을 먹다가 4학년 큰 딸의 이마에 뿌려진 여드름을 봤다. 여드름이 난 건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앞머리를 내리고 다녀서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머리띠로 앞머리를 뒤로 넘긴 채 식욕 왕성하게 콩나물국을 마셔대는 딸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오늘에서야 제대로 이마와 대면한 것이다.
‘여드름? 푸훗, 귀엽군’ 하는 생각이 들 줄 알았는데 그러기엔 이마에 좁쌀이라도 쏟은 것처럼 여드름은 많았고 크기도 다양했다. 마치 중2 때 내 이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아빠보다 아이스크림이 더 좋다며 해맑게 아이스크림을 빨던 아이가 어느덧 2차 성징의 시기에 와 있다. 이거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양가감정에 휩싸인다.
사실 요즘 아이들은 워낙 조숙하다 보니, 그깟 여드름 가지고 유난을 떤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남의 집 아이 이마에 여드름 나는 거야 때 되면 당연한 거지만, 내 자식 이마의 여드름은 임신과 출산, 첫 뒤집기와 직립보행의 시작 등 지난 11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며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늘어나는 여드름의 숫자만큼 가족보다 친구를 더 많이 찾을 것이고, 내가 우리 부모님께 그랬던 것처럼 귀찮은 잔소리꾼 정도로 나와 아내를 재단할 것이다(부모가 되고 나서야 그때 부모님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생각이 이쯤에 미치니 돌연 코끝이 찡해진다. 아직 이런 말 할 나이는 아니지만, 사람의 일생이라는 게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순식간처럼 느껴진다. 이게 다 큰 딸의 여드름 때문이다. 더 사랑하고, 표현하고, 함께 시간 보내며 살아야겠다.
여담이지만, 지난 주말에 발생한 통풍으로 의심되는 무릎 통증 때문에 아직도 걸음걸이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큰 딸 이마에 뿌려진 여드름을 보며 다시 한 번 외친다.
건강! 건강! 건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