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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반갑다, 넘버투~

by Kang.P 2017.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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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4주마다 출장을 다닌다.  


지난 8월 2(수)일부터 3일(목)까지 나는 단양군 영춘면의 만종리로 출장을 가 있었다. 살인적인 폭염 속이었지만, 날씨가 핑계는 될 수 없기에 우리 스탭들은 소나기처럼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꾸역꾸역 일정을 진행해 갔다. 

그렇게 첫날 일정을 마치고 밤 10시에 늦은 저녁을 먹으며 송별회 겸 환영회를 했다. 자신의 꿈에 한발짝 더 다가가고자 일은 그만 두는 친구들과 새롭게 우리팀에 합류하는 친구가 있었다. 각자의 결정과 그 길을 축복하며 하루를 마치고 둘째날을 맞이했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폭염의 연속이었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동네 중국집에 들어가며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괜찮아?"


사실 만삭인 아내는 둘째 출산 예정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태였다. 혹시나 출장 중에 아이가 나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나머지, 일하는 중간 중간에 수시로 전화를 걸어 상태를 확인했다. 


"응~ 괜찮아~ 변화생기면 내가 연락할테니까 신경쓰지 말고 일해~ "


이렇게라도 확인을 하고 나면 마음이 좀 편해졌고, 일에 집중을 할 수 있었다. 속이 더부룩해서 남들보다 먼저 식당을 나와 담배 한 대 입에 물고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카톡 문자가 하나 왔다. 

 

'오빠 이슬 비쳤어... 끝나면 바로 집으로 와'


마음이 급해졌다. 오후에는 두 개의 일정이 잡혀있었다. 따박따박 필요한 부분만 머리로 정리하며 최대한 시간을 줄이려 노력했고, 그렇게 일을 마치고 충주로 넘어오니, 대략 4시 전후였다. 국장에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바로 집으로 달려갔다. 



본격적인 진통의 시작.  


아내는 생각보다 침착했다. 이슬은 비쳤지만 아직 진통은 없단다. 첫째 때도 이슬 비치고 하루 이틀 후에 태어났다며 다시 회사로 가란다. 하지만 그럴 순 없는 노릇이다. 둘째는 첫째보다 빠르게 진행된다는 것을 둘 다 알고 있었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8시 쯤 되었을까. 아내가 진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가진통이려니 생각했지만 밤 10시가 넘어가면서 진통과 주기는 증가했다. 결국은 장모님이 오셔서 잠든 큰 딸을 봐주시고 우리는 짐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밤 11시 30분.

우리는 상황을 체크하며 출산 준비에 들어갔다. 




본격적으로 진통이 시작되었다. 진통이 올 때마다 힘들어하는 아내를 옆에서 보고 있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그저 손 꼭 잡고 '힘내', '잘하고 있어' 정도의 말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손을 부들부들 떨며 얼굴의 실핏줄이 터져가며 이 악물고 괴로워하는 아내를 보며...'우리에게 더이상의 아이는 없다.' 맘 속으로 다짐했다. 

시간은 밤 12시를 지났고 새벽 1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아이 나올 때가 되었는지 간호사는 의사에게 전화를 했고, 나에게는 이제 나가 있으라고 명령아닌 명령을 내렸다. 너무 정신없이 나오던 나머지, 무섭다는 아내에게 '힘내~ 잘 될꺼야' 라는 응원의 말 한마디 건내지 못하고 나온 것을 굳게 닫힌 분만실 문을 바라보며 후회했다. 



첫만남.  


분만실 밖에서의 시간은 통상적인 세상의 시간과 다르게 느껴졌다.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졌다. 마치 군대에서의 그것처럼 말이다. 앉아있질 못하고 안쪽에서 나는 미세한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문 앞을 서성이며 두 손을 모으고 신에게 기도했다. 산모와 아이의 건강만 지켜주신다면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하겠다고... 그리고 이 기도는 2년 큰 딸 출산 때, 이곳에서 했던 것과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같았다. 


새벽 2시 13분.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순간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얼른 들어가서 산모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도 한 참 후에 분만실 문이 열렸다.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아내와 아이를 만났다. 

"고생했어..."

이 말 만큼 적절한 표현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다. 

또 하나의 생명체가 태어났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했다. 덕분에 우리는 세식구에서 네식구가 되었다. 





시기 질투 많이 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큰 딸도 동생이 생긴 것이 마냥 신기한가 보다. 어디까지나 지금까지의 상황이다. 



양가 어르신들도 많이 신기해하고 이뻐하셨다. 그러면서도 혹 큰 딸아이가 소외감이라도 느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더 애정표현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이 이런 축복과 감동 속에서 출생하는 것일께다. 때문에 우리는 누구에게라도 선임이라는 이유로, 갑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굴어서는 안된다. 혹 그런 자들은 반드시 자신의 자식들이 누군가에게 똑같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 저주 같지만 그래야 세상은 공평하고, 그래야 조금씩 바뀔 것이다.


이제 나는 두 아이의 아빠다...



어깨가 무거워서인지 저런 표정이 나왔다...ㅋ 책임감이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아직 이름도 없는 축복이의 출산을 축하하며, 나 또한 마음을 다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미장원에 다녀왔다. 새로운 가족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변화의 의미로 나에게도 물리적인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변화를 줬나보다,,,

저... 저렇게 밝은 머리로 내일 출근을 해야하는데...



밀어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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